차범근 역대급 기록에 부랴부랴 규정 개정

TV 촬영
한국 축구(蹴球)를 대표하는 손흥민이 지난 10월 14일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통해 통산 137회의 국가대표 최장 출장기록을 세웠다. 차범근 홍명보의 136회를 넘어선 대기록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도 영광인데 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100회 넘게 출장한다는 것은 선수로선 최고의 영광일 것이다. 손흥민은 18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선 대선배 차범근으로부터 기록달성을 축하받는 특별한 세리머니도 가졌다.
스포츠에서 국가대표 출장횟수를 공식 집계하고 그 의미를 인정하는 것은 축구가 유일하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오래전부터 소위 A매치로 불리는 대표팀 출장기록을 각국 협회로부터 받아 100회를 기록하는 선수에게 명예의 전당 격인 센추리클럽(Century Club) 등재(登載)를 발표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A매치와 센추리클럽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국제 정보에 어두운 우물안 개구리였던 시절이다. 당시 A매치 의미와 센추리클럽의 존재를 처음 보도한 주인공이 필자였다. 1988년 스포츠서울 축구기자로 언론에 입문한 필자는 영국에서 발간하는 ‘월드 사커’ 매거진을 탐독하던중 유명 선수를 소개하는 프로필마다 달린 독특한 정보에 관심이 생겼다. 선수마다 ‘30 caps’, ‘40 caps’ 라고 표기한 것이다.
따로 설명은 없었지만 이내 그것이 국가대표 출장 횟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외국에선 대표 출장을 선수 개인의 영광스러운 기록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알고 국내에도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FIFA의 뉴스레터에 잉글랜드 대표팀 골키퍼 피터 쉴튼이 대표팀 출장 세계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짤막하게 실렸다. 그 소식을 통해 FIFA가 100회 출장기록을 한 세기를 뜻하는 ‘센추리클럽’으로 관리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축구기자로서 우리나라 주요 선수들의 대표 출장기록을 찾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문제는 이같은 기록을 선수 본인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조차 전혀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표팀 경기기록지 조차 제대로 보존 돼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딛친 셈이다.
당시 스포츠서울은 사실상 조석간제(朝夕刊制)라 하루에 2회 이상 기사를 송고해야했고 축구팀 막내기자로 바쁘디 바쁜 일상이었다. 그러나 젊고 혈기가 넘치던 시절, 기록을 찾아야 한다는 의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축구협회를 통해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면 신문의 보도를 찾아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스포츠서울이 있던 프레스센터 4층에 자매지 서울신문과 공유하는 조사부가 있었다. 이곳에 수십년치의 주요 신문들이 보관돼 있었다. 과거 기록을 찾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스포츠서울(1985년 6월)에 앞서 창간된 일간스포츠(1969년 9월)였다. 문제는 언제 어느때 대표팀 경기가 있었는지 그 기록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일일이 신문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검색어(檢索語)를 넣고 클릭 한번으로 간단히 확인되겠지만 그시절엔 정보를 확인하려면 조사부에 가서 개인별 사건별로 모은 수많은 기사자료들을 일일이 뒤져봐야 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당시 국가대표로 가장 많이 출장한 것이 유력한 차범근과 최순호를 특정하여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여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이따금 국립도서관까지 가기도 하는 노력 끝에 나온 결과는 놀라웠다. 차범근이 무려 180여회, 최순호도 120회에 달하는게 아닌가. 당시 세계 1위 피터 쉴튼이 104회를 기록했을 무렵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선수 두명이 그를 제쳤으니 축구계에선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차범근은 86월드컵을 끝으로 대표에서 은퇴했지만 91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최순호는 20대 후반의 현역으로 건재해 기록 추가도 가능했다. 두 사람에 대한 엄청난 기록이 발굴되었지만 축구협회와 FIFA의 인정을 받는 것이 관건이었다.
먼저 축구협회를 찾아가 기록 집계과정을 설명하고 각종 자료를 제출하고 인증을 요청했다. 이어 배정두 국제부장에게 FIFA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 만약 공인이 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특종이 될 수 있었다.
FIFA에서 소식이 온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였다. 후일담이지만 FIFA는 축구협회의 기록 요청을 받고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축구 변방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선수 두명이 당시 세계 1위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으로 센추리클럽에 올랐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필자의 기록 발굴로 FIFA는 A매치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등 규정을 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차범근과 최순호의 출장 횟수가 사실이지만 대표팀간의 경기가 아닌 것들이 섞여 있다는 묘책(?)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남미에서는 대표팀간 경기가 일반적이지만 한국 대표팀은 80년대까지 유럽이나 남미의 명문 클럽들과의 초청 경기가 적잖게 있었다. 이때부터 FIFA는 A매치를 국가대표팀간의 경기로 명문화했다.
FIFA는 차범근과 최순호의 출장기록 인정을 보류하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리고 A매치 규정을 손질했고 이후에 두 선수의 기록을 재집계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차범근은 최종적으로 136회가 되었고 최순호도 98회로 줄어들었다. 우리 선수 입장에서는 국가대표 경기를 하고도 상대가 대표팀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손해를 본 셈이었다. 그래도 한국의 선수들이 사상 처음 센추리클럽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FIFA와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크게 보람있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최순호였다. FIFA는 1999년 1월 최순호가 대표 출장 105회로 센추리클럽 가입을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후 없던 일이 되버렸다. 실사 과정에서 100경기 출전에 미달됐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당초 FIFA는 대한축구협회의 기록을 인정했으나 뒤늦게 올림픽 예선경기 7게임을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FIFA의 결정은 다분히 아시아에 대해 차별적이었다. 올림픽 축구에서 연령제한(23세 이하)이 적용된 것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부터지만 최순호는 그 이전에 성인대표팀이 출전한 올림픽 경기에서도 뛰었다. A매치의 요건을 분명히 충족한 것이다. 그러나 FIFA는 유럽의 경우 올림픽에 스타선수들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때문에 올림픽 경기를 평가절하(平價切下)한 것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불세출의 활약을 펼친 차범근 조차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것은 2000년임을 고려하면 확실히 FIFA는 아시아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범근은 고려대 1학년이던 1972년 5월 아시안컵 이라크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1977년 6월 1978 아르헨티나월드컵 아시아 예선 홍콩전에서 100경기를 달성했다. 당시 24세 1개월로 역대 최연소 센추리클럽의 기록도 세웠다. 손흥민은 29세 10개월의 나이에 센추리클럽의 영광을 안았는데 이는 차범근, 김호곤(26세 4개월) 기성용(29세 4개월) 박성화(29세 5개월)에 이어 역대 5번째 최연소 기록이다.
현재 센추리클럽에 헌액된 한국선수들은 손흥민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등과 최근 100경기를 달성한 이재성 등 17명에 이른다. 이에 축구협회는 ‘옛 스타’들의 기록 찾기에 애를 쓰고 있다. 해외 경기 기록을 찾기 위해 동남아와 중동에 직원을 파견해 증빙자료를 확보하는 노력끝에 김호곤(117경기), 조영증(102경기), 박성화(101경기) 등이 새로게 센추리클럽에 가입했고 차범근의 기록도 2020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정무(104경기)와 조광래(100경기)는 각각 올림픽 예선 12경기와 6경기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센추리클럽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순호와 마찬가지 케이스다. 이에 축구협회는 88서울올림픽까지는 나이제한이 없었던 만큼 모두 국가대표팀이 출전한 아시아 예선을 A매치로 분류해야 한다며 FIFA를 설득한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피터 쉴튼은 1990년 125회로 당시 세계최다기록을 세우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그는 46세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했는데 공식경기 출장기록이 무려 1,390회에 달했다. 2000년대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록관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센추리클럽에 진입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또한 유럽과 남미리그가 A매치를 피해 일정을 조정하는 등 선수들의 대표 출장 기회가 크게 늘어나면서 센추리클럽 가입 선수들도 크게 늘어났다. 현재 센추리클럽 1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25경기)를 비롯, 바데르 알 무타(쿠웨이트 196경기), 소친온(말레이시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이상 195경기)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192경기) 순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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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역대급 기록에 부랴부랴 규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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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蹴球)를 대표하는 손흥민이 지난 10월 14일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통해 통산 137회의 국가대표 최장 출장기록을 세웠다. 차범근 홍명보의 136회를 넘어선 대기록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도 영광인데 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100회 넘게 출장한다는 것은 선수로선 최고의 영광일 것이다. 손흥민은 18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선 대선배 차범근으로부터 기록달성을 축하받는 특별한 세리머니도 가졌다.
스포츠에서 국가대표 출장횟수를 공식 집계하고 그 의미를 인정하는 것은 축구가 유일하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오래전부터 소위 A매치로 불리는 대표팀 출장기록을 각국 협회로부터 받아 100회를 기록하는 선수에게 명예의 전당 격인 센추리클럽(Century Club) 등재(登載)를 발표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A매치와 센추리클럽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국제 정보에 어두운 우물안 개구리였던 시절이다. 당시 A매치 의미와 센추리클럽의 존재를 처음 보도한 주인공이 필자였다. 1988년 스포츠서울 축구기자로 언론에 입문한 필자는 영국에서 발간하는 ‘월드 사커’ 매거진을 탐독하던중 유명 선수를 소개하는 프로필마다 달린 독특한 정보에 관심이 생겼다. 선수마다 ‘30 caps’, ‘40 caps’ 라고 표기한 것이다.
따로 설명은 없었지만 이내 그것이 국가대표 출장 횟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외국에선 대표 출장을 선수 개인의 영광스러운 기록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알고 국내에도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FIFA의 뉴스레터에 잉글랜드 대표팀 골키퍼 피터 쉴튼이 대표팀 출장 세계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짤막하게 실렸다. 그 소식을 통해 FIFA가 100회 출장기록을 한 세기를 뜻하는 ‘센추리클럽’으로 관리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축구기자로서 우리나라 주요 선수들의 대표 출장기록을 찾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문제는 이같은 기록을 선수 본인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조차 전혀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표팀 경기기록지 조차 제대로 보존 돼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딛친 셈이다.
당시 스포츠서울은 사실상 조석간제(朝夕刊制)라 하루에 2회 이상 기사를 송고해야했고 축구팀 막내기자로 바쁘디 바쁜 일상이었다. 그러나 젊고 혈기가 넘치던 시절, 기록을 찾아야 한다는 의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축구협회를 통해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면 신문의 보도를 찾아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스포츠서울이 있던 프레스센터 4층에 자매지 서울신문과 공유하는 조사부가 있었다. 이곳에 수십년치의 주요 신문들이 보관돼 있었다. 과거 기록을 찾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스포츠서울(1985년 6월)에 앞서 창간된 일간스포츠(1969년 9월)였다. 문제는 언제 어느때 대표팀 경기가 있었는지 그 기록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일일이 신문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검색어(檢索語)를 넣고 클릭 한번으로 간단히 확인되겠지만 그시절엔 정보를 확인하려면 조사부에 가서 개인별 사건별로 모은 수많은 기사자료들을 일일이 뒤져봐야 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당시 국가대표로 가장 많이 출장한 것이 유력한 차범근과 최순호를 특정하여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여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이따금 국립도서관까지 가기도 하는 노력 끝에 나온 결과는 놀라웠다. 차범근이 무려 180여회, 최순호도 120회에 달하는게 아닌가. 당시 세계 1위 피터 쉴튼이 104회를 기록했을 무렵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선수 두명이 그를 제쳤으니 축구계에선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차범근은 86월드컵을 끝으로 대표에서 은퇴했지만 91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최순호는 20대 후반의 현역으로 건재해 기록 추가도 가능했다. 두 사람에 대한 엄청난 기록이 발굴되었지만 축구협회와 FIFA의 인정을 받는 것이 관건이었다.
먼저 축구협회를 찾아가 기록 집계과정을 설명하고 각종 자료를 제출하고 인증을 요청했다. 이어 배정두 국제부장에게 FIFA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 만약 공인이 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특종이 될 수 있었다.
FIFA에서 소식이 온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였다. 후일담이지만 FIFA는 축구협회의 기록 요청을 받고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축구 변방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선수 두명이 당시 세계 1위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으로 센추리클럽에 올랐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필자의 기록 발굴로 FIFA는 A매치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등 규정을 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차범근과 최순호의 출장 횟수가 사실이지만 대표팀간의 경기가 아닌 것들이 섞여 있다는 묘책(?)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남미에서는 대표팀간 경기가 일반적이지만 한국 대표팀은 80년대까지 유럽이나 남미의 명문 클럽들과의 초청 경기가 적잖게 있었다. 이때부터 FIFA는 A매치를 국가대표팀간의 경기로 명문화했다.
FIFA는 차범근과 최순호의 출장기록 인정을 보류하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리고 A매치 규정을 손질했고 이후에 두 선수의 기록을 재집계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차범근은 최종적으로 136회가 되었고 최순호도 98회로 줄어들었다. 우리 선수 입장에서는 국가대표 경기를 하고도 상대가 대표팀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손해를 본 셈이었다. 그래도 한국의 선수들이 사상 처음 센추리클럽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FIFA와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크게 보람있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최순호였다. FIFA는 1999년 1월 최순호가 대표 출장 105회로 센추리클럽 가입을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후 없던 일이 되버렸다. 실사 과정에서 100경기 출전에 미달됐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당초 FIFA는 대한축구협회의 기록을 인정했으나 뒤늦게 올림픽 예선경기 7게임을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FIFA의 결정은 다분히 아시아에 대해 차별적이었다. 올림픽 축구에서 연령제한(23세 이하)이 적용된 것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부터지만 최순호는 그 이전에 성인대표팀이 출전한 올림픽 경기에서도 뛰었다. A매치의 요건을 분명히 충족한 것이다. 그러나 FIFA는 유럽의 경우 올림픽에 스타선수들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때문에 올림픽 경기를 평가절하(平價切下)한 것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불세출의 활약을 펼친 차범근 조차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것은 2000년임을 고려하면 확실히 FIFA는 아시아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범근은 고려대 1학년이던 1972년 5월 아시안컵 이라크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1977년 6월 1978 아르헨티나월드컵 아시아 예선 홍콩전에서 100경기를 달성했다. 당시 24세 1개월로 역대 최연소 센추리클럽의 기록도 세웠다. 손흥민은 29세 10개월의 나이에 센추리클럽의 영광을 안았는데 이는 차범근, 김호곤(26세 4개월) 기성용(29세 4개월) 박성화(29세 5개월)에 이어 역대 5번째 최연소 기록이다.
현재 센추리클럽에 헌액된 한국선수들은 손흥민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등과 최근 100경기를 달성한 이재성 등 17명에 이른다. 이에 축구협회는 ‘옛 스타’들의 기록 찾기에 애를 쓰고 있다. 해외 경기 기록을 찾기 위해 동남아와 중동에 직원을 파견해 증빙자료를 확보하는 노력끝에 김호곤(117경기), 조영증(102경기), 박성화(101경기) 등이 새로게 센추리클럽에 가입했고 차범근의 기록도 2020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정무(104경기)와 조광래(100경기)는 각각 올림픽 예선 12경기와 6경기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센추리클럽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순호와 마찬가지 케이스다. 이에 축구협회는 88서울올림픽까지는 나이제한이 없었던 만큼 모두 국가대표팀이 출전한 아시아 예선을 A매치로 분류해야 한다며 FIFA를 설득한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피터 쉴튼은 1990년 125회로 당시 세계최다기록을 세우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그는 46세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했는데 공식경기 출장기록이 무려 1,390회에 달했다. 2000년대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록관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센추리클럽에 진입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또한 유럽과 남미리그가 A매치를 피해 일정을 조정하는 등 선수들의 대표 출장 기회가 크게 늘어나면서 센추리클럽 가입 선수들도 크게 늘어났다. 현재 센추리클럽 1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25경기)를 비롯, 바데르 알 무타(쿠웨이트 196경기), 소친온(말레이시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이상 195경기)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192경기) 순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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