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 만든이가 폐지운동 벌인 까닭
어버이날을 보내며 100년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어머니날’ 기사(1926.5.9.)를 보게 되었습니다. 100년전 신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근대신문>은 ‘오늘이 어머니날’ 이라는 기사에서 “오늘(오월둘째주일)은 세계의 아들과 딸들이 어머니를 기념하는 ‘어머니날’이외다. 어머니가 살아있는 이는 빨간 장미꽃을 옷깃에 꽂고, 어머니를 여윈 자녀들은 흰 장미꽃을 꽂아 기념한다”면서 영국시인 ‘쩬늬’의 시 어머니 전문을 번역 소개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시인 쩬늬가 누구일까요. 궁금하여 자료를 검색한 결과, 주인공은 제인 테일러(Jane Taylor, 1783–1824)였습니다. 당시 신문이 제인의 영어철자 Jane을 '쩬늬' 또는 '제니'로 표기한 것이죠. 그시절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는 1926년 5월 9일, 세계 어머니날을 기념하여 당시 '오월회'의 정홍교(丁洪敎)가 번역하여 소개했습니다. 한편, 제인 테일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Twinkle, Twinkle, Little Star)'의 가사를 썼다는 것은 덤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요. 우리도 본래는 어머니날을 기념하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개칭되어 아버지 어머니 두분을 기리는 날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AI 생성 이미지
어머니날을 처음 제창한 것은 안나 자비스(Anna Jarvis)라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날의 초기 풍습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안나 자비스는 190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생전에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꽃인 흰 카네이션을 추모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노고(勞苦)를 기리는 기념일을 만들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속에 마침내 3년뒤인 1908년 5월 10일 일요일,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라프톤의 한 교회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후 안나의 끈질긴 청원 끝에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 일요일을 정식 '어머니날'로 공포했습니다.
이처럼 어머니날 초기엔 '흰 카네이션'만 사용되었습니다. 안나는 행사에서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꽃인 '흰 카네이션'을 준비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요. 그녀에게 흰 카네이션은 어머니의 순결한 사랑과 희생을 의미한 것일뿐, 살아계신 분과 돌아가신 분을 구분하는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모든 사람이 어머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흰 꽃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1914년 어머니날이 미국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꽃집 상인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 분들은 빨간 꽃을 달아 기쁨을 표시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 "살아계시면 빨간색(Red), 돌아가셨으면 흰색(White)"이라는 공식이 기독교 단체와 학교 등을 통해 교육되며 완전히 정착되었지요.
우리나라도 이러한 풍습이 소개되면서 어머니날(초기엔 가정의날)을 기리게 되었는데 궁금한 것은 왜 카네이션이 아니고 장미였을까 하는 겁니다.
1920년대 중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어머니 주일(Mother’s Sunday)' 행사가 시작되었을 때는 특정한 꽃이 완전히 정착(定着)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나 잡지를 보면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며 가슴에 붉은 장미를 달아드린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미국 풍습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인 꽃인 장미가 먼저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아버지날’ 영향을 받았을 경우입니다. 미국에서 아버지 날은 워싱턴주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Sonora Smart Dodd) 여사가 처음 제안했는데요. 1909년 교회에서 열린 ‘어머니날’ 설교를 듣던 중, 아내 없이 홀로 6남매를 키워낸 자신의 아버지 윌리엄 스마트(William Jackson Smart)를 기리기 위한 날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생일이었던 6월 5일에 행사를 열고 싶었지만, 시간 부족으로 인해 1910년 6월 19일(6월 세번째 일요일) 워싱턴주 스포캔에서 최초의 아버지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어머니날이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것과 달리, 아버지날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어머니날과 달리 아버지날은 남성성을 훼손하거나 상업적인 술책에 불과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거든요.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아버지날 지지 의사를 밝혔고, 1924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권고안을 냈지만 거의 반세기 뒤인 1966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6월 세 번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비로소 영구적인 국가 기념일로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아버지날 초기에 사용된 꽃이 바로 장미였습니다. 아버지날을 제창한 소노라 도드도 가슴에 꽃을 달 것을 권장했는데 살아계신 아버지를 위해서는 빨간 장미를,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는 흰 장미를 달아드리는 것이 초기 전통이었습니다.
1920년대 한국 신문에서 '장미'를 언급한 것은, 당시 미국에서 막 정착되기 시작한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의 장미 풍습'이 일본을 거치거나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카네이션이 정착된 것은 정부 차원에서 기념일을 지정한 시기와 맞물립니다. 1956년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는데 이후부터 학교나 관공서 행사에서 카네이션을 다는 것이 공식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고, 장미는 점차 기념일의 중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머니날에 숨어 있습니다. 어머니날을 만든 안나 자비스는 이 뜻깊은 기념일이 상업화되는 것에 크게 분노하여 '어머니날 폐지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그녀는 어머니날이 '어머니를 향한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 되길 바랐지, 지금처럼 선물을 사고 파는 '비즈니스의 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날이 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후, 꽃집들은 카네이션 가격을 폭등(暴騰)시켰습니다. 안나 는 격분해 "꽃집들이 탐욕을 위해 내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비난하며 카네이션 불매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녀는 꽃을 사는 대신 어머니에게 직접 쓴 편지로 마음을 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꽃뿐만 아니라 제과 업체와 카드 회사들이 '어머니날 특수'를 노려 마케팅을 시작하자, 그녀는 이들을 향해 격하게 비난했습니다.
"기성품 카드를 보내는 것은 직접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게으른 사람들의 행동이다."
"어머니에게 사탕 한 상자를 사다 드리고는 그 선물을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마라."
안나 자비스는 '어머니날'이라는 명칭을 상표로 등록해 상업적 이용을 막으려 했고, 기념일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단체들을 상대로 3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925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어머니회(American War Mothers) 집회에 난입해 카네이션을 판매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치안 문란죄로 체포되기도 했다니 얼마나 그녀가 이 운동에 진심이었는지 드러납니다.
그녀는 평생 모은 재산을 관련 소송과 폐지 운동에 쏟아부었고, 결국 말년에는 눈도 멀고 빈털터리가 되어 1948년 84세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그녀가 요양원에서 지내는 동안 발생한 비용의 일부가, 그녀가 그토록 비난했던 꽃집 상인 연합회의 익명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는 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세상은 이미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100년 전 신문 기사 속 어머니날 이야기가 현대의 과도한 상업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네요. 어버이날을 보내며 진심을 전하는 '편지 한 통'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안나 자비스의 진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백년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영국시인 ‘쩬늬’의 <어머니> 번역문과 원문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어머니
- 쩬늬(제인 테일러) 지음 / 정홍교 역
어머니의 가슴은 넓기도 해요
한업시 넓다는 땅보다도
끝 닿은 곳이 없다는 하늘보다도
어머니의 가슴은 넓기도 해요.
하루종일 밤새도록 뛰어놀고
또 안겨 있어도
어머니의 가슴은 단샘이 흘러요.
뛰놀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배가 고프면 목이 마르면
마를 줄 모르는 단 꿀을 마셔요.
어머니의 노래는 보드러워요
놀다가 곤해서 잠들려 할 땐
어머니의 보드라운 자장 노래가
고이도 나를 안아 주어요.
My Mother
- Jane Taylor (1783–1824)
Who sat and watched my infant head
When sleeping on my cradle bed,
And tears of sweet affection shed?
My Mother.
When pain and sickness made me cry,
Who gazed upon my heavy eye,
And wept for fear that I should die?
My Mother.
Who taught my infant lips to pray
And love God’s holy book and day,
And walk in wisdom’s pleasant way?
My Mother.
And can I ever cease to be
Affectionate and kind to thee,
Who wast so very kind to me,
My Mother?

사족(蛇足): 한국처럼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국가들은 어디일까요.
먼저 미국은 어머니날, 아버지날과 함께 ’부모의날‘(Parents' Day)이 있습니다. 매년 7월 넷째 일요일로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녀 양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을 지지하기 위해 법안에 서명하며 공식 제정되었습니다. 미국은 5월의 '어머니날'과 6월의 '아버지날'을 특별하게 지내지만 '부모님의 날'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보내는 편입니다.
베트남의 ‘어버이날’(Vu Lan / 부란절)은 음력 7월 15일입니다. 불교 전통인 '백중'에서 유래한 '부란(Vu Lan)' 축제일로,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살아계신 부모님 모두에게 효도를 실천하는 날이며, 한국과 비슷하게 가슴에 꽃을 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면 붉은 장미, 돌아가셨으면 흰 장미를 답니다.
필리핀의 어버이날(Parents' Day)은 매년 12월 첫째 월요일입니다. 과거에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지냈지만, 현재는 12월의 첫 월요일을 공식적인 '부모님의 날'로 통합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도 어버이날(Ziua Părinților)이 있습니다. 매년 6월 1일 (국제 어린이날과 같은 날)로 2009년부터 어린이날에 맞춰 부모의 역할도 함께 기리는 의미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어버이날'은 유교적 효(孝) 사상과 서구의 기념일 문화가 결합하여 전 국민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독특하고 강력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사례에 속합니다.
100년 전 신문에서 본 '어머니날'의 풍경이 오늘날의 '어버이날'로 진화한 과정을 보면, 시대에 따라 명칭과 대상은 조금씩 변해왔지만 부모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본질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어머니날’ 만든이가 폐지운동 벌인 까닭
어버이날을 보내며 100년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어머니날’ 기사(1926.5.9.)를 보게 되었습니다. 100년전 신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근대신문>은 ‘오늘이 어머니날’ 이라는 기사에서 “오늘(오월둘째주일)은 세계의 아들과 딸들이 어머니를 기념하는 ‘어머니날’이외다. 어머니가 살아있는 이는 빨간 장미꽃을 옷깃에 꽂고, 어머니를 여윈 자녀들은 흰 장미꽃을 꽂아 기념한다”면서 영국시인 ‘쩬늬’의 시 어머니 전문을 번역 소개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시인 쩬늬가 누구일까요. 궁금하여 자료를 검색한 결과, 주인공은 제인 테일러(Jane Taylor, 1783–1824)였습니다. 당시 신문이 제인의 영어철자 Jane을 '쩬늬' 또는 '제니'로 표기한 것이죠. 그시절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는 1926년 5월 9일, 세계 어머니날을 기념하여 당시 '오월회'의 정홍교(丁洪敎)가 번역하여 소개했습니다. 한편, 제인 테일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Twinkle, Twinkle, Little Star)'의 가사를 썼다는 것은 덤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요. 우리도 본래는 어머니날을 기념하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개칭되어 아버지 어머니 두분을 기리는 날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AI 생성 이미지
어머니날을 처음 제창한 것은 안나 자비스(Anna Jarvis)라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날의 초기 풍습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안나 자비스는 190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생전에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꽃인 흰 카네이션을 추모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노고(勞苦)를 기리는 기념일을 만들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속에 마침내 3년뒤인 1908년 5월 10일 일요일,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라프톤의 한 교회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후 안나의 끈질긴 청원 끝에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 일요일을 정식 '어머니날'로 공포했습니다.
이처럼 어머니날 초기엔 '흰 카네이션'만 사용되었습니다. 안나는 행사에서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꽃인 '흰 카네이션'을 준비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요. 그녀에게 흰 카네이션은 어머니의 순결한 사랑과 희생을 의미한 것일뿐, 살아계신 분과 돌아가신 분을 구분하는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모든 사람이 어머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흰 꽃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1914년 어머니날이 미국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꽃집 상인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 분들은 빨간 꽃을 달아 기쁨을 표시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 "살아계시면 빨간색(Red), 돌아가셨으면 흰색(White)"이라는 공식이 기독교 단체와 학교 등을 통해 교육되며 완전히 정착되었지요.
우리나라도 이러한 풍습이 소개되면서 어머니날(초기엔 가정의날)을 기리게 되었는데 궁금한 것은 왜 카네이션이 아니고 장미였을까 하는 겁니다.
1920년대 중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어머니 주일(Mother’s Sunday)' 행사가 시작되었을 때는 특정한 꽃이 완전히 정착(定着)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나 잡지를 보면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며 가슴에 붉은 장미를 달아드린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미국 풍습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인 꽃인 장미가 먼저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아버지날’ 영향을 받았을 경우입니다. 미국에서 아버지 날은 워싱턴주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Sonora Smart Dodd) 여사가 처음 제안했는데요. 1909년 교회에서 열린 ‘어머니날’ 설교를 듣던 중, 아내 없이 홀로 6남매를 키워낸 자신의 아버지 윌리엄 스마트(William Jackson Smart)를 기리기 위한 날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생일이었던 6월 5일에 행사를 열고 싶었지만, 시간 부족으로 인해 1910년 6월 19일(6월 세번째 일요일) 워싱턴주 스포캔에서 최초의 아버지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어머니날이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것과 달리, 아버지날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어머니날과 달리 아버지날은 남성성을 훼손하거나 상업적인 술책에 불과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거든요.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아버지날 지지 의사를 밝혔고, 1924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권고안을 냈지만 거의 반세기 뒤인 1966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6월 세 번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비로소 영구적인 국가 기념일로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아버지날 초기에 사용된 꽃이 바로 장미였습니다. 아버지날을 제창한 소노라 도드도 가슴에 꽃을 달 것을 권장했는데 살아계신 아버지를 위해서는 빨간 장미를,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는 흰 장미를 달아드리는 것이 초기 전통이었습니다.
1920년대 한국 신문에서 '장미'를 언급한 것은, 당시 미국에서 막 정착되기 시작한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의 장미 풍습'이 일본을 거치거나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카네이션이 정착된 것은 정부 차원에서 기념일을 지정한 시기와 맞물립니다. 1956년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는데 이후부터 학교나 관공서 행사에서 카네이션을 다는 것이 공식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고, 장미는 점차 기념일의 중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머니날에 숨어 있습니다. 어머니날을 만든 안나 자비스는 이 뜻깊은 기념일이 상업화되는 것에 크게 분노하여 '어머니날 폐지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그녀는 어머니날이 '어머니를 향한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 되길 바랐지, 지금처럼 선물을 사고 파는 '비즈니스의 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날이 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후, 꽃집들은 카네이션 가격을 폭등(暴騰)시켰습니다. 안나 는 격분해 "꽃집들이 탐욕을 위해 내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비난하며 카네이션 불매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녀는 꽃을 사는 대신 어머니에게 직접 쓴 편지로 마음을 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꽃뿐만 아니라 제과 업체와 카드 회사들이 '어머니날 특수'를 노려 마케팅을 시작하자, 그녀는 이들을 향해 격하게 비난했습니다.
"기성품 카드를 보내는 것은 직접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게으른 사람들의 행동이다."
"어머니에게 사탕 한 상자를 사다 드리고는 그 선물을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마라."
안나 자비스는 '어머니날'이라는 명칭을 상표로 등록해 상업적 이용을 막으려 했고, 기념일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단체들을 상대로 3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925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어머니회(American War Mothers) 집회에 난입해 카네이션을 판매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치안 문란죄로 체포되기도 했다니 얼마나 그녀가 이 운동에 진심이었는지 드러납니다.
그녀는 평생 모은 재산을 관련 소송과 폐지 운동에 쏟아부었고, 결국 말년에는 눈도 멀고 빈털터리가 되어 1948년 84세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그녀가 요양원에서 지내는 동안 발생한 비용의 일부가, 그녀가 그토록 비난했던 꽃집 상인 연합회의 익명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는 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세상은 이미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100년 전 신문 기사 속 어머니날 이야기가 현대의 과도한 상업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네요. 어버이날을 보내며 진심을 전하는 '편지 한 통'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안나 자비스의 진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백년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영국시인 ‘쩬늬’의 <어머니> 번역문과 원문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어머니
- 쩬늬(제인 테일러) 지음 / 정홍교 역
어머니의 가슴은 넓기도 해요
한업시 넓다는 땅보다도
끝 닿은 곳이 없다는 하늘보다도
어머니의 가슴은 넓기도 해요.
하루종일 밤새도록 뛰어놀고
또 안겨 있어도
어머니의 가슴은 단샘이 흘러요.
뛰놀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배가 고프면 목이 마르면
마를 줄 모르는 단 꿀을 마셔요.
어머니의 노래는 보드러워요
놀다가 곤해서 잠들려 할 땐
어머니의 보드라운 자장 노래가
고이도 나를 안아 주어요.
My Mother
- Jane Taylor (1783–1824)
Who sat and watched my infant head
When sleeping on my cradle bed,
And tears of sweet affection shed?
My Mother.
When pain and sickness made me cry,
Who gazed upon my heavy eye,
And wept for fear that I should die?
My Mother.
Who taught my infant lips to pray
And love God’s holy book and day,
And walk in wisdom’s pleasant way?
My Mother.
And can I ever cease to be
Affectionate and kind to thee,
Who wast so very kind to me,
My Mother?
사족(蛇足): 한국처럼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국가들은 어디일까요.
먼저 미국은 어머니날, 아버지날과 함께 ’부모의날‘(Parents' Day)이 있습니다. 매년 7월 넷째 일요일로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녀 양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을 지지하기 위해 법안에 서명하며 공식 제정되었습니다. 미국은 5월의 '어머니날'과 6월의 '아버지날'을 특별하게 지내지만 '부모님의 날'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보내는 편입니다.
베트남의 ‘어버이날’(Vu Lan / 부란절)은 음력 7월 15일입니다. 불교 전통인 '백중'에서 유래한 '부란(Vu Lan)' 축제일로,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살아계신 부모님 모두에게 효도를 실천하는 날이며, 한국과 비슷하게 가슴에 꽃을 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면 붉은 장미, 돌아가셨으면 흰 장미를 답니다.
필리핀의 어버이날(Parents' Day)은 매년 12월 첫째 월요일입니다. 과거에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지냈지만, 현재는 12월의 첫 월요일을 공식적인 '부모님의 날'로 통합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도 어버이날(Ziua Părinților)이 있습니다. 매년 6월 1일 (국제 어린이날과 같은 날)로 2009년부터 어린이날에 맞춰 부모의 역할도 함께 기리는 의미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어버이날'은 유교적 효(孝) 사상과 서구의 기념일 문화가 결합하여 전 국민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독특하고 강력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사례에 속합니다.
100년 전 신문에서 본 '어머니날'의 풍경이 오늘날의 '어버이날'로 진화한 과정을 보면, 시대에 따라 명칭과 대상은 조금씩 변해왔지만 부모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본질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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