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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고요의 결을 찍어낸 작가 김상유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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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암동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석파정(石坡停)이란 곳이 있습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서(別墅)로 알려졌는데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지금은 서울미술관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시공간을 넘어 한 예술가의 정원을 거닐어보려 합니다. 바로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상유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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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고요'입니다. 세상은 초단위로 변하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우리의 눈을 피로하게 하지만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800평의 너른 공간을 가득 채운 150여 점의 작품들을 마주하노라면, 왜 전시 제목이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인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에칭(Etching)'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금속판에 산(acid)을 부어 부식(腐蝕)시킨 뒤 그 홈에 잉크를 채워 찍어내는 판화 기법입니다. 1960년대 한국은 판화의 불모지(不毛地)였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그때, 연희전문(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김상유는 홀로 이 험난한 판화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1963년 여름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낯선 장르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동판화 30점만으로 구성된 무명의 화가 개인전은 당시 한국 화단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상유(1926~2002)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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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 켠에는 낡은 국수 기계가 놓여 있습니다. ‘국수틀 프레스기’ 당시 판화를 찍어낼 프레스기가 한국에 어디 흔했겠습니까? 김상유 화백은 고물상을 뒤져 수동식 국수 기계를 찾아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밀어 면을 뽑던 그 롤러 사이에 동판을 넣고 돌려 작품을 찍어낸 것이지요. 배고픈 시절, 허기를 채우던 기계가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예술 도구로 변모한 순간입니다. 참으로 해학적이면서도 눈물겨운 집념이 느껴집니다.

 

김상유의 모습은 서양 판화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를 떠올리게 합니다. 뒤러가 정교한 동판화로 북유럽 르네상스를 열었다면, 김상유는 국수 기계를 개조한 프레스로 한국 현대 판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의 초기 동판화들을 보노라면, 철학도의 고뇌가 날카로운 바늘 끝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판화는 ‘긁고 비우는 예술’입니다. 김상유의 세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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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가혹한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판화는 복제 가능한 예술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은 가장 노동집약적입니다. 제대로 된 보호 장구도 없이 질산과 초산을 다루며 판을 부식시키던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는 서서히 그의 시력을 앗아갔습니다. 녹내장(綠內障)으로 앞이 흐릿해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작가는 세상의 끝에 다다른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김상유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금속판 대신 따뜻하고 투박한 나무로 향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칼을 들고 나무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졌기에 오히려 형태는 단순해졌고, 그 빈자리는 깊은 사유가 채웠습니다.

 

이 시기 탄생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대산루(對山樓)' 시리즈입니다. 방탄소년단의 RM(김남준)이 소장하고 SNS에 공유하며 화제가 되었던 그 작품이죠. 경북 상주의 실존하는 누각(樓閣)을 본보기로 한 이 작품들 앞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이입됩니다. 한지 위에 놋숟가락으로 일일이 문질러 찍어낸 그 먹색은, 공장에서 찍어낸 검은색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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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화풍을 가진 작가로 흔히 장욱진 화백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두 분 모두 소박하고 한국적인 정서를 공유하지만, 장욱진의 그림이 천진난만한 동심을 노래한다면 김상유의 목판화는 수행자의 고독이 느껴집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가 목판화의 나이테를 이용해 인간의 불안을 극대화했다면, 김상유는 나무의 결을 살려 그 안에 '무위자연'의 평온함을 담아냈습니다.

 

전시의 후반부에서 김상유 화백은 다시 한번 변신합니다. 시력이 더욱 악화되고 어깨까지 망가지자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듭니다. "판화는 사는 사람이 없어서 붓 가는 대로 그리는 유화로 바꿨다"는 생전 인터뷰는 솔직함에 미소를 짓게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처절한 생존과 투쟁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집니다.

 

그의 유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기름지고 화려한 느낌이 아닙니다. 색을 덧입히는 대신, 천으로 닦아내며 마치 불필요한 욕망을 걷어내듯 남는 미세한 색조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동양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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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유의 세계는 ‘한국적 고요’를 품고 있습니다. 그의 투명한 여백에는 안개 낀 한옥 기둥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명상하는 남자’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인물은 세속의 소음을 차단한 채, 무심한 듯 앉아 있습니다. 이 인물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전국 사찰을 여행하다 만난 '세심단속문(洗心斷俗문)' 앞의 작은 돌부처처럼, 그림 속 인물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옷마저 벗어던진 채 산과 해, 그리고 자신만을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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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예술가 김상유를 지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원, 박주환, 이우복 등 한국 미술사의 1세대 컬렉터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의 에피소드는 한 편의 영화 같습니다. 2002년 김 화백의 마지막 전시회에서 모든 작품을 구입하고, 전시 개막식에 직접 끓인 미역국을 들고 갔다는 이야기는 예술가와 후원자의 신뢰가 어떤 결실을 맺는지를 보여줍니다.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작가와, 그 가치를 알아본 심미안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이 '고요의 정원'을 거닐 수 있는 것이지요.

 

김상유 작가는 2002년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몸을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뿌려달라고 유언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자연'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시는 단순히 과거의 작품을 구경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은근과 끈기'를 대면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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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팍팍하고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부암동 언덕을 올라 이 전시장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김상유의 인물들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을 겁니다.

 

"당신은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며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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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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