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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페북사진 한 장에 떠오른 추억

2026-02-28

어느날 Long Island Manhasset Art Committee 위원장이었던 Mrs. Madeline Kle가 가게에 들어왔다. 쇼윈도와 벽에 걸려있는 나의 작품을 유심히 봤다며 여러 타운에 있는 지역 갤러리, 도서관 갤러리에 추천해 볼테니 Slide Film과 브로셔, 작품 사진을 주겠냐고... 그후로 여기저기 타운에서 전시를 열게 되었고 맨하탄에서 전시 할 때보다 판매가 더 늘어나 먹고 살 수 있는 시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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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영하던 액자 가게 이름은, Road Gallery - 길을 그리던 나는 가게 이름도 Road로 했고 Road Gallery에서 전시를 원했던 동포 작가, 한국에서 오신 작가 몇몇 분들과 그룹에게 전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다가 약 2년 후 그만두었다.

 

액자 제작 외의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활용하려고 가게를 열었는데 가족에게 아무런 댓가를 지불해 줄 수 없었고 명색이 화가인 내가 동료 화가에게 운영비를 받는다는게 내키지 않았다. (이건 오로지 내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부담이었는데 정작 그러한 배려가 가족에게는 물질적 삶의 부족함으로 부딛쳐 왔다.)

 

7days 일할 때라 맨하탄에서 전시하는 한인 동료작가들의 오픈식 참석은 불가능(기차타고 맨하탄에 도착하는 시간이면 벌써 파하는 시간...ㅜ) 또한 전시장 오픈시 (Nonprofit organization Gallery 'Pleiadis Gallery' Located in Soho.) 한국인 동료 화가도 10여명 방문한다. 전시 때 서로 오가야 하는데 시간상 거리상 나오질 못하고 대화 나눌 기회도 적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소원해진다. 사람 마음이 Give and Take 아닌가.

 

9.11 사태로 Job이 없는 나에게 먹고 사는 일이 막막했던 시절 Long Island Port Jefferson에서 사진현상과 액자 가게를 먼저 운영하던 손자연 후배님은 나이가 나보다 두달 빠르고 학번으론 2년 후배... 나를 형이라 부르는게 편하다며 호칭을 그리한다. 일주일에 2, 3번 전화하며 정신적으론 나이들어 감을 서로 잊으려 노력하는 노땅들이다. “액자가게를 하면 형이(림을 더 그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형한테 이 잡이 제일 적합하다”며 강추해서 액자 가게를 열게 되었다.

 

9.11 사태 이틀 전인가 맨하탄 Chelsea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사건후 맨하탄 출입이 통제되어 몇년을 준비한 전시는 오픈일날 왔던 화가 동료들과 축하객이 전부인 상태로 허망하게 끝났다. 나의 직장이던 일본 콜택시의 일본 Banker 열두 분이 9.11 날 World Trade Center에 일하던 중에 돌아가셨고 그후 여러 뱅크가 닫기도 하고 다른 주로 이사가기도 했다.

 

콜택시 기사로 4년간 현장에서 뛰던 중 저녁 9시에서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일 할 Dispatcher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면 손님의 전화가 없는 시간을 활용해 좀더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현장 기사를 접고 Dispatcher로 일했다. 손님 Call이 뜸한 밤 1시경부터 아침 6시경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9.11 사태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그무렵 한국에서 개인전이 있어 출국 인사차 사무실에 들렸는데 사장님이 “성모씨 입국 할때면 우리 회사 문 닫아 없을 거”라고...ㅜㅜ 한국 전시 체류 동안 무겁고 우울한 기분으로...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다행으로 후배님의 강추로 액자 가게를 오픈 할 수 있는 목돈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기사 시절 나이드신 동료 기사분들 중에 “성모씨, 젊을 때 이 직업을 하면 안돼. 가능하면 빨리 다른 Job을 잡는게 좋아” 하며 조언 해 주시던 그분들 말씀대로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게 되었다.

 

몇주전 뉴욕에 전시회로 방문하신 화가 서용선형님 그리고 동생분과 차안에서 액자 가게와 Gallery를 운영 할때 - 몇년 후 갤러리 공간을 Wife에게 Nail 가게로 만들어줬고... 액자를 짜는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액자를 만들고 있을 때 Nail 손님으로 바쁠땐 나를 호출하는 바람에 Nailist로 Two job을 하기도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 둘 작품이 팔릴 때마다 그때 그때 밀린 카드대금, 월세 내다보니 그림만 없어졌더라며 볼멘 소리를 하니 뒷좌석에 않은 동생분이 "작품 팔며 살고 계셨네요" 그 멘트에 난 내 자신 순간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본 나의 삶의 각도에 움찔했다. 맞아... 왜 내 작품 없어졌다는 생각이 먼저 였을까? 작품을 사준 그분들로 내가 살아왔다는 것을...ㅎㅎㅎ 동생분 땡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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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에 사진을 올린건 2012년이지만, 사진을 찍은 것은 2002년이다

 

사진속 그분을 보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로의 작업실을 방문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추억이 떠올라 몇자 적어보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조성모의 Along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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