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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개포동 50년사 편찬사업을 하는 이유 - 역사의 효용을 생각한다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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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현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인공지능에게 역사를 왜 배워야 하나, 질문을 던지면 이렇게 대답한다. 이를 개포동(開浦洞) 50년사와 관련해 물으면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개포동 지역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다. 개포동의 지난 수십년은 한 동네의 변화인 동시에, 서울의 도시화, 강남 개발, 아파트 주거문화의 형성, 원주민과 이주민의 삶, 재건축과 공동체 변화가 압축되어 나타난 역사이다. 따라서 개포동의 과거를 기록하는 일은 오늘의 개포동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옥구슬이 은쟁반에 데구르르 굴러가는 소리처럼 듣기가 좋다. 달리 보면 말의 겉모양만 번드르르해 보이기도 한다.

 

유투브에서 본 어느 대학교수는 학생들의 레포트 채점 소회라며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을 많이 이용한 레포트는 티가 난다. 다이소에서 파는 사기그릇처럼 매끈하고 균형이 잡혀있다. 그런데 값싸 보이고 진실이 느껴지지 않는다. 달항아리는 진흙으로 위의 절반과 아래 절반을 만든 뒤에 손으로 합친다. 그래서 미세하게 좌우상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만들 때마다 다르게 나온다. 이것이 오히려 예술적인 깊이를 준다. 이 말에 나도 도전할 용기를 냈다.

 

삼성 이재용이 대학에서 역사를 배운 이유는 그의 할아버지 이병철이 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영학은 회사에 와서도 배울 수 있으니 젊을 때 인간을 배우라고 했단다. 나도 역사학을 공부하는 아들에게 인문학이야말로 학문의 왕이고 귀족학문(貴族學問)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도 전공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개포동 50년사를 기획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개인사적 조건에서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동기도 개인적인데 역사의 효용을 증명하는 논리도 나의 경험들 중에서 찾았다. 그러니 나의 뇌피셜이 될 수도 있겠다.

 

지난 90년대에 프랑스에 유학갔다가 십여년간 동포신문을 펴내며 살았다. 그때 성인이 된 입양인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알지 못해 괴로워했다. 많은 노력끝에 한국에서 자신을 버린 부모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 뒤에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단지 부모를 만나서 자신이 한국의 어떤 사회적 조건에 처해 있었는지 알면 충분했다. 부모가 미혼모였는지 어느 집 처마에 또는 파출소 문앞에 버려졌는지 알고나서 비로소 안개와 같았던 출생의 비밀이 걷혀지는 듯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대부분 불행하고 비극적 상황에서 유기된 것이지만 그것은 이미 예상한 바다. 비로소 그들은 자기의 나라에 돌아와서 전보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간다. 다수가 한국에서 찾은 부모와 더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언어 불통도 이유지만 그들의 실제 목적은 개인 역사의 뿌리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 이민 가서 20년이 넘은 동포에게 들은 말이다. 맨해튼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발바닥이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착지가 잘 안되는 것같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긴 걸까. 그것은 낯설음이라기보다 불편함이라는 표현이 더 실체에 가까웠다. 그는 납득이 안돼 혼란스러워했다.

 

내가 살았던 프랑스 동포도 같은 경험을 토로했다. 파리의 거주지 동네를 걸을 때 발걸음이 이상했다. 발 아래에 무언가 스폰지같은 것이 깔려있는 듯한 또는 구름위를 걷는 것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상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이따금 간헐적으로 겪는 문제다. 증상이 심각한 것은 아니어서 바쁜 일상에 묻히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애써 이 느낌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면 불편함의 인식이 약해진다. 그러다가도 마음 기저에 있던 것이 불현듯 예고없이 되살아난다.

 

뉴욕과 파리의 이상한 사례를 전해 들은 서울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종로2가를 걸을 때에는 그런 불편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곳의 골목길은 재수할 때 단과반 학원을 가던 길이고 라면을 먹던 분식집이 있던 곳이다. 실연(失戀)해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걷던 길이다. 종로2가에는 과거가 있다. 반면에 뉴욕 맨해튼이나 파리의 거리에는 그런 과거의 기억이 없다. 그것이 착지가 안되는 듯한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과거의 없다는 것은 즉 역사의 부재는 이런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개포동에서 올해로 꼭 10년째 살고 있지만 이따금 뉴욕 파리 동포들과 같은 불편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땅에 40년전에는 무엇이 있었고 누가 살았을까. 들리는 말로는 그때 이 동네가 억새가 무성한 들판이었고 전답이 있었다고 한다. 밭이라면 어떤 농사를 지었을까.

 

최근에 개포동 50년사 사업에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 수도공고 앞에서 구룡역까지 땅이 충주석씨 가문의 소유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참외농사를 했는데 아현동 굴레방시장에서 트럭이 와서 싣고 갔다고 한다. 석미균 개포경로당 회장님에게 들은 말이다. 그이후에 나도 발걸음이 뜨는 현상이 사라지고 착지(着地)가 제대로 되는 것같다. 비로소 개포동 사람이 되는 것일까.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즉 역사의 효용이 이런 것 아닐까. 개포동 50년사 애써서 만들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 추억록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포동에서 초중고를 나왔는데 여기가 내 고향이라는 생각이 1도 없는 청년들도 찾아서 읽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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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제완 좌우간에이념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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