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 사북'영화 시사회(試寫會)가 지난 4일 제주시 연동 롯데 시네마에서 있었다. '사북'하면 탄광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동해안을 따라 태백, 정선, 사북 등은 한때 수십만명의 광부가 일했고, 탄광 주변에는 광산촌이 형성되어 지역 경제의 큰 축을 이루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석유와 천연가스 사용이 늘면서 석탄산업은 쇄퇴기에 접어들었다. 이어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단계적으로 폐쇄가 진행되었다. 그 중 탄광 지역에서의 실업과 지역 붕괴 문제가 심각해질때에 사북에서는 광부와 주민들이 열악한 작업환경과 생활환경, 임금개선을 요구하는 항의가 일어났고, 당시 상황과 이후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윤석열이 계엄을 발표한 직후 우리나라는 혼란에 빠졌지만, 그 와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사건도 있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것이다. '소년이 온다'로 광주항쟁을 잔잔하게 인간의 내면을 풀어내면서도 당시 상황을 현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고,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도 당시엔 세월호 참사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에 그녀의 수상은 국민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한강 작가의 국제 수상은 매번 국내의 혼란 속에서 빗줄기처럼 국민들에게 기쁨을 전달하는 소식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참아내고 억눌러 있던 내 속의 생각지 못했던 의식을 불러내고, 잊고 있었던 감정을 끌어내면서도 당시 사회의 혼란한 상태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표현하는 작가 특유의 작품세계가 있다.
'흰', '희랍어 시간' 등의 그녀의 작품들을 찾아 읽다가 난 한강 작가의 소설의 근간(根幹)이 된다는 '검은 사슴'에서 탄광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검은 사슴'은 깊은 탄광속에서 광부들에게 속아 자신의 반짝이는 이와 눈을 빼앗기고도 탄광 밖의 햇빛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동물이지만 정작 햇빛을 보게 되면 녹아버리는 동물이다. 탄광촌에서 어렵게 살던 주인공 '의선'이 도심 한복판에서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자유와 환희에 찬 얼굴로 뛰어 다니다가 사라진다. 이 후 그녀를 돌보던 인영과 명윤이 의선을 찾아 나선 탄광촌에서 만나는 탄광촌 사람들, 의선은 물론이고 의선에게 집착하는 인영과 명윤도 그들이 만나는 탄광촌의 사람들도 검은 사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어둠속에서 살면서도 단 한번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빛을 갈망한다.

# 사북 탄광촌 사진 영화에서 캡처
'검은 사슴'의 배경이 된 탄광촌을 생각했던 나는 '1980 사북'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소설 속 의선의 아버지와 그들의 동료들도 영화에서 소개되는 사람들처럼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사북탄광의 사주인 동원탄광과 전두환 정부가 어떻게 광부들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았는지를 개인들의 증언과 자료들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은 광부들의 집단행동 요구를 수용한 직후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下手人) 역할을 했던 군부는 이들 광부들을 찾아내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고 투옥하여 광부들의 삶과 가정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다. 당시 어용노조 조합장이던 측과 광부들의 뜻을 대표했던 사람들은 현재까지 분노의 골이 깊었다. 두 집단이 이 영화 제작에 각자의 입장과 경험을 증언하면서 '1980 사북' 당시의 진실이 밝혀지고,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독과의 간담회는 영화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강한 메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 개의 진실이 엇갈리는 현대사 중에서 여순, 4.3, 대구, 광주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있었던 사건들은 국가폭력이 시발점이 되었지만, 국가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들 사이에 깊은 간극을 만들어놓고 그 책임을 회피한 지가 벌써 반세기가 넘어가고 있다.

# 어용노조에 반발하는 광부들의 항의 모습 영화 캡처
영화 '1980 사북'은 제주 4.3처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숨어있는 국가의 폭력이라는 대전제를 양측의 증언으로 끌어냈다. 당시 노동쟁의를 벌였다가 당시 계엄군 합동수사단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긴 약 200여명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2015년 사북 항쟁의 주동자로 처벌받은 이원갑, 신경이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이후 2019년 '사북항쟁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보상 및 직권 재심 회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때 모였던 20여명의 피해자 분들 중 최근까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유족의 재심청구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총 8명이다. 영화 제작 중에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어용노조 위원장 이재기의 아내에게 이원갑씨가 쓰는 사과의 편지가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화해의 시발점이 되었다고도한다. 영화제작 후 시사회에 초대된 당시 사북 와 영월의 경찰들도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미쳐 몰랐다며 피해자들의 재심을 돕겠다고 사과했다고도 한다.

# 제작진과의 간담회 사진 문영임
국가의 억압으로 생긴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화해가 영화제작이라는 과정으로 이루어진것이 이 영화의 특색이다. 박봉남 감독과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은 피해자들이 보지 못하는 국가 폭력이 문제지 언제까지 같은 지역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싸울 것이냐며 사건을 중립적인 자세로 보여줬다. 영화 제작진의 첫 취지였던 사북지역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 갈등을 끝내고 지역 사회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당사자들의 도덕적인 선택들이 타지역에서 이루어내지 못했던 화해를 이끌어낸 것이다. 문화 예술이라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의미는 더욱 큰 장점인 것 같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지역에 섞여 살고 있어서 아직도 화해가 어렵다는 제주에서는 더 큰 의미를 던져줬다.

# 제임스 놀란 신부님 사진 문영임
감독과의 간담회에 앞서 제작진은 1980년 당시 사북성당에서 주임신부였던 제임스 놀란 신부님을 직접 소개했다. 1964년 한국에 오셔서 당시 사북항쟁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통받았던 가족들과 광부들을 돌보았고, 광주뿐만 아니라 사북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이되신 신부님이 상영회에 직접 참여하고 사람들을 격려해주어 관람객 모두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육지 사람들이 모인다는 몬딱에서 최근 문화예술 신문을 발행하며 이젠 우리들의 모임에서 지역사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역활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문화와 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행사를 소모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제 제주 토박이들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문화와 자연을 사랑하고 제주를 지금껏 지켜온 제주인들의 삶은 우리들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영화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의 물꼬를 열었듯이, 몬딱의 문화예술 신문이 제주 토박이들과 이주민들의 간극(間隙)을 좁히고, 함께 제주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지켜나가야 할 공동책임자가 되었다.
글 문영임(린다 모) |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을 잠시 접고 고국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느끼고 보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이웃의 만남이 더 넓은 세상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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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사북'영화 시사회(試寫會)가 지난 4일 제주시 연동 롯데 시네마에서 있었다. '사북'하면 탄광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동해안을 따라 태백, 정선, 사북 등은 한때 수십만명의 광부가 일했고, 탄광 주변에는 광산촌이 형성되어 지역 경제의 큰 축을 이루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석유와 천연가스 사용이 늘면서 석탄산업은 쇄퇴기에 접어들었다. 이어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단계적으로 폐쇄가 진행되었다. 그 중 탄광 지역에서의 실업과 지역 붕괴 문제가 심각해질때에 사북에서는 광부와 주민들이 열악한 작업환경과 생활환경, 임금개선을 요구하는 항의가 일어났고, 당시 상황과 이후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윤석열이 계엄을 발표한 직후 우리나라는 혼란에 빠졌지만, 그 와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사건도 있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것이다. '소년이 온다'로 광주항쟁을 잔잔하게 인간의 내면을 풀어내면서도 당시 상황을 현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고,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도 당시엔 세월호 참사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에 그녀의 수상은 국민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한강 작가의 국제 수상은 매번 국내의 혼란 속에서 빗줄기처럼 국민들에게 기쁨을 전달하는 소식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참아내고 억눌러 있던 내 속의 생각지 못했던 의식을 불러내고, 잊고 있었던 감정을 끌어내면서도 당시 사회의 혼란한 상태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표현하는 작가 특유의 작품세계가 있다.
'흰', '희랍어 시간' 등의 그녀의 작품들을 찾아 읽다가 난 한강 작가의 소설의 근간(根幹)이 된다는 '검은 사슴'에서 탄광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검은 사슴'은 깊은 탄광속에서 광부들에게 속아 자신의 반짝이는 이와 눈을 빼앗기고도 탄광 밖의 햇빛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동물이지만 정작 햇빛을 보게 되면 녹아버리는 동물이다. 탄광촌에서 어렵게 살던 주인공 '의선'이 도심 한복판에서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자유와 환희에 찬 얼굴로 뛰어 다니다가 사라진다. 이 후 그녀를 돌보던 인영과 명윤이 의선을 찾아 나선 탄광촌에서 만나는 탄광촌 사람들, 의선은 물론이고 의선에게 집착하는 인영과 명윤도 그들이 만나는 탄광촌의 사람들도 검은 사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어둠속에서 살면서도 단 한번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빛을 갈망한다.
# 사북 탄광촌 사진 영화에서 캡처
'검은 사슴'의 배경이 된 탄광촌을 생각했던 나는 '1980 사북'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소설 속 의선의 아버지와 그들의 동료들도 영화에서 소개되는 사람들처럼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사북탄광의 사주인 동원탄광과 전두환 정부가 어떻게 광부들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았는지를 개인들의 증언과 자료들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은 광부들의 집단행동 요구를 수용한 직후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下手人) 역할을 했던 군부는 이들 광부들을 찾아내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고 투옥하여 광부들의 삶과 가정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다. 당시 어용노조 조합장이던 측과 광부들의 뜻을 대표했던 사람들은 현재까지 분노의 골이 깊었다. 두 집단이 이 영화 제작에 각자의 입장과 경험을 증언하면서 '1980 사북' 당시의 진실이 밝혀지고,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독과의 간담회는 영화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강한 메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 개의 진실이 엇갈리는 현대사 중에서 여순, 4.3, 대구, 광주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있었던 사건들은 국가폭력이 시발점이 되었지만, 국가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들 사이에 깊은 간극을 만들어놓고 그 책임을 회피한 지가 벌써 반세기가 넘어가고 있다.
# 어용노조에 반발하는 광부들의 항의 모습 영화 캡처
영화 '1980 사북'은 제주 4.3처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숨어있는 국가의 폭력이라는 대전제를 양측의 증언으로 끌어냈다. 당시 노동쟁의를 벌였다가 당시 계엄군 합동수사단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긴 약 200여명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2015년 사북 항쟁의 주동자로 처벌받은 이원갑, 신경이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이후 2019년 '사북항쟁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보상 및 직권 재심 회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때 모였던 20여명의 피해자 분들 중 최근까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유족의 재심청구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총 8명이다. 영화 제작 중에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어용노조 위원장 이재기의 아내에게 이원갑씨가 쓰는 사과의 편지가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화해의 시발점이 되었다고도한다. 영화제작 후 시사회에 초대된 당시 사북 와 영월의 경찰들도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미쳐 몰랐다며 피해자들의 재심을 돕겠다고 사과했다고도 한다.
# 제작진과의 간담회 사진 문영임
국가의 억압으로 생긴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화해가 영화제작이라는 과정으로 이루어진것이 이 영화의 특색이다. 박봉남 감독과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은 피해자들이 보지 못하는 국가 폭력이 문제지 언제까지 같은 지역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싸울 것이냐며 사건을 중립적인 자세로 보여줬다. 영화 제작진의 첫 취지였던 사북지역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 갈등을 끝내고 지역 사회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당사자들의 도덕적인 선택들이 타지역에서 이루어내지 못했던 화해를 이끌어낸 것이다. 문화 예술이라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의미는 더욱 큰 장점인 것 같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지역에 섞여 살고 있어서 아직도 화해가 어렵다는 제주에서는 더 큰 의미를 던져줬다.
# 제임스 놀란 신부님 사진 문영임
감독과의 간담회에 앞서 제작진은 1980년 당시 사북성당에서 주임신부였던 제임스 놀란 신부님을 직접 소개했다. 1964년 한국에 오셔서 당시 사북항쟁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통받았던 가족들과 광부들을 돌보았고, 광주뿐만 아니라 사북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이되신 신부님이 상영회에 직접 참여하고 사람들을 격려해주어 관람객 모두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육지 사람들이 모인다는 몬딱에서 최근 문화예술 신문을 발행하며 이젠 우리들의 모임에서 지역사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역활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문화와 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행사를 소모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제 제주 토박이들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문화와 자연을 사랑하고 제주를 지금껏 지켜온 제주인들의 삶은 우리들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영화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의 물꼬를 열었듯이, 몬딱의 문화예술 신문이 제주 토박이들과 이주민들의 간극(間隙)을 좁히고, 함께 제주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지켜나가야 할 공동책임자가 되었다.
글 문영임(린다 모) |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을 잠시 접고 고국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느끼고 보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이웃의 만남이 더 넓은 세상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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