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90분간 펼쳐지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敍事)이다. 22명의 선수가 빚어내는 정교한 드라마요, 전 세계 수십억 인류가 공유하는 비언어적(non verbal) 축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게임’의 심장에서 기이하고도 불길한 맥박이 느껴진다. 그라운드가 거대한 자본의 광고판으로 전락하고, 규정은 수익 극대화의 도구로 재편되고 있다.
자본이 설계한 '4쿼터제' 축구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2026 북미 월드컵을 지켜보는 축구 팬들은 경기중 갑자기 끊어지는 흐름에 짜증이 난다. 전후반에 한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수분 섭취 휴식 시간)’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 처음 도입된 규정을 놓고 FIFA는 선수 보호와 경기력 향상을 위한 배려라 강변한다. 하지만 돔구장과 서늘한 기후를 가진 도시에서까지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이 3분의 시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시간, 전 세계의 TV 화면은 경기 분석이 아닌 상업 광고로 뒤덮인다. 흐름이 끊기고, 몰입은 깨지며, 축구 고유의 ‘연속성’이라는 미학은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우리는 지금 축구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광고 사이사이에 곁들여진 축구라는 이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인가? 농구와 미식축구의 방식을 이식(移植)하여 기어이 ‘4쿼터제’의 변종을 만들어낸 그들의 솜씨는 가히 기회주의적 상업주의의 정점(頂點)이라 부를 만하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지난 수십 년간 출전국 수를 16개국에서 24개국, 32개국, 그리고 48개국으로 거침없이 불려왔다. 이제는 64개국 확대를 운운한다. 누군가는 이를 ‘축구의 세계화’라 포장하겠지만, 속내는 명확하다. 더 많은 경기, 더 많은 티켓 판매, 더 많은 중계권료라는 ‘황금알’을 낳기 위함이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지난달 10일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 기자회견에서 “이번 월드컵 평균 입장료는 500달러(약 76만원) 이하로 미국 스포츠 경기 중 가장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조별리그 경기도 최소 수십만원을 줘야 표를 구할 수 있고, 결승전은 한때 가장 싼 티켓이 1만6000달러(약 2400만원)가 넘는 등 ‘폭리 월드컵’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에 FIFA는 최근 60달러(약 9만원)짜리 입장권을 새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선 진출국을 무리하게 늘리면 피할수 없는 전력차로 수준은 떨어지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자칫 지루한 통과의례(通過儀禮)로 전락한다. 하물며 천문학적인 티켓 가격을 “미국 시장의 기준”이라며 옹호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축구의 주인이어야 할 팬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FIFA 잣대의 이중성
이번 월드컵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낡은 방패 뒤에 숨겨진 노골적인 이중잣대가 구설을 빚고 있다. 개최국 일원인 미국은 16강전에서 뜻밖의 낭보(朗報)를 접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 상대 발목을 밟아 퇴장당했던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의 1경기 출전정지 징계가 FIFA 결정으로 ‘집행유예’ 처리되면서 벨기에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FIFA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공개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이 인판티노 회장에게 징계 재검토를 요청했다고 보도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백악관의 요구 한마디에 규정이 흔들리고 개최국 흥행을 위해 정의가 타협되는 모습은 FIFA 스스로 주창(主唱)해온 ‘스포츠의 정치적 독립’이 얼마나 허울 좋은 구호인지를 드러낸다.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중징계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FIFA는 축구협회 운영과 관련한 외부(정부)의 감사 및 개입이 발생했을 때, 정치적 독립성 및 자율성 훼손을 경고하며 협회에 대한 징계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FIFA 정관상 정부나 외부 기관의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문체부의 감사 및 징계 권고가 실질적 집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FIFA와의 갈등 및 국제 대회 출전 정지의 제재 위험이 제기된 것이다.
FIFA의 단호함은 상대에 따라 한없이 무뎌진다.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미국에서 치러야 했던 이란은 선수단과 일부 코칭스태프만 비자를 받아 미국에 베이스캠프를 차리지 못하고 멕시코로 이동하는 전례없는 불편을 감수했다. 그것도 경기 이틀 전 입국, 종료 당일 출국이라는 엄격한 조건이었다. 선수들 컨디션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에서 현지 적응은커녕,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아야 했으니 예선 탈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가하면 소말리아 출신 심판 오마르 아르탄도 월드컵 심판으로 선정됐지만 미국 입국이 거부되는 바람에 4년만의 소중한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인판티노는 “우리가 정부나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달라. 다들 ‘릴렉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을 개최국으로 지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생기는 건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는 말도 했다.
지구촌 최고의 인기 스포츠 축구는 평범한 아이들이 공을 차며 꿈을 키우는 모습부터, 4년마다 수억명의 팬들이 함성으로 하나가 되는 장면까지 세계인 모두의 문화적 자산이다. 경기 시간을 쪼개고, 징계를 주무르며, 숫자를 턱없이 늘리는 행위는 결국 축구라는 거대한 생태계(生態界)를 죽이는 길이다.
축구의 묘미는 팽팽한 긴장감과 경기 내내 파도치듯 밀려왔다 쓸려가는 치열한 연속성에 있다. 우리는 보장된 시간을 끊고 난폭하게 침입하는 광고를 위해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예외적인 환경에서 수분보충이 필요하다면 물을 마시며 쉬는 모습까지도 팬들은 볼 권리가 있다. 90분간 쉼없이 펼쳐지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그 속에 담긴 열정(熱情)을 보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이제 축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48개국, 64개국이라는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 경쟁의 밀도를 회복해야 한다. 광고를 위해 축구의 묘미를 훼손하는 마이너스 규정을 철폐하고, 축구 본연의 정체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 순수마저 상술로 활용한다면, 머지않아 팬들은 거대한 상업의 탑을 무너뜨릴 것이다. 방향을 잃은 축구는 결국 길을 잃게 마련이다. 지금이야말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목소리를 높여 ‘축구’ 그 자체를 회복해야 할 때다.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robin&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D%BA%C6%F7%C5%D7%C0%CE%B8%D5%C6%AE+%B7%CE%BA%F3&sop=and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90분간 펼쳐지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敍事)이다. 22명의 선수가 빚어내는 정교한 드라마요, 전 세계 수십억 인류가 공유하는 비언어적(non verbal) 축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게임’의 심장에서 기이하고도 불길한 맥박이 느껴진다. 그라운드가 거대한 자본의 광고판으로 전락하고, 규정은 수익 극대화의 도구로 재편되고 있다.
자본이 설계한 '4쿼터제' 축구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2026 북미 월드컵을 지켜보는 축구 팬들은 경기중 갑자기 끊어지는 흐름에 짜증이 난다. 전후반에 한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수분 섭취 휴식 시간)’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 처음 도입된 규정을 놓고 FIFA는 선수 보호와 경기력 향상을 위한 배려라 강변한다. 하지만 돔구장과 서늘한 기후를 가진 도시에서까지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이 3분의 시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시간, 전 세계의 TV 화면은 경기 분석이 아닌 상업 광고로 뒤덮인다. 흐름이 끊기고, 몰입은 깨지며, 축구 고유의 ‘연속성’이라는 미학은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우리는 지금 축구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광고 사이사이에 곁들여진 축구라는 이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인가? 농구와 미식축구의 방식을 이식(移植)하여 기어이 ‘4쿼터제’의 변종을 만들어낸 그들의 솜씨는 가히 기회주의적 상업주의의 정점(頂點)이라 부를 만하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지난 수십 년간 출전국 수를 16개국에서 24개국, 32개국, 그리고 48개국으로 거침없이 불려왔다. 이제는 64개국 확대를 운운한다. 누군가는 이를 ‘축구의 세계화’라 포장하겠지만, 속내는 명확하다. 더 많은 경기, 더 많은 티켓 판매, 더 많은 중계권료라는 ‘황금알’을 낳기 위함이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지난달 10일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 기자회견에서 “이번 월드컵 평균 입장료는 500달러(약 76만원) 이하로 미국 스포츠 경기 중 가장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조별리그 경기도 최소 수십만원을 줘야 표를 구할 수 있고, 결승전은 한때 가장 싼 티켓이 1만6000달러(약 2400만원)가 넘는 등 ‘폭리 월드컵’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에 FIFA는 최근 60달러(약 9만원)짜리 입장권을 새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선 진출국을 무리하게 늘리면 피할수 없는 전력차로 수준은 떨어지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자칫 지루한 통과의례(通過儀禮)로 전락한다. 하물며 천문학적인 티켓 가격을 “미국 시장의 기준”이라며 옹호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축구의 주인이어야 할 팬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FIFA 잣대의 이중성
이번 월드컵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낡은 방패 뒤에 숨겨진 노골적인 이중잣대가 구설을 빚고 있다. 개최국 일원인 미국은 16강전에서 뜻밖의 낭보(朗報)를 접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 상대 발목을 밟아 퇴장당했던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의 1경기 출전정지 징계가 FIFA 결정으로 ‘집행유예’ 처리되면서 벨기에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FIFA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공개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이 인판티노 회장에게 징계 재검토를 요청했다고 보도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백악관의 요구 한마디에 규정이 흔들리고 개최국 흥행을 위해 정의가 타협되는 모습은 FIFA 스스로 주창(主唱)해온 ‘스포츠의 정치적 독립’이 얼마나 허울 좋은 구호인지를 드러낸다.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중징계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FIFA는 축구협회 운영과 관련한 외부(정부)의 감사 및 개입이 발생했을 때, 정치적 독립성 및 자율성 훼손을 경고하며 협회에 대한 징계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FIFA 정관상 정부나 외부 기관의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문체부의 감사 및 징계 권고가 실질적 집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FIFA와의 갈등 및 국제 대회 출전 정지의 제재 위험이 제기된 것이다.
FIFA의 단호함은 상대에 따라 한없이 무뎌진다.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미국에서 치러야 했던 이란은 선수단과 일부 코칭스태프만 비자를 받아 미국에 베이스캠프를 차리지 못하고 멕시코로 이동하는 전례없는 불편을 감수했다. 그것도 경기 이틀 전 입국, 종료 당일 출국이라는 엄격한 조건이었다. 선수들 컨디션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에서 현지 적응은커녕,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아야 했으니 예선 탈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가하면 소말리아 출신 심판 오마르 아르탄도 월드컵 심판으로 선정됐지만 미국 입국이 거부되는 바람에 4년만의 소중한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인판티노는 “우리가 정부나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달라. 다들 ‘릴렉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을 개최국으로 지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생기는 건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는 말도 했다.
지구촌 최고의 인기 스포츠 축구는 평범한 아이들이 공을 차며 꿈을 키우는 모습부터, 4년마다 수억명의 팬들이 함성으로 하나가 되는 장면까지 세계인 모두의 문화적 자산이다. 경기 시간을 쪼개고, 징계를 주무르며, 숫자를 턱없이 늘리는 행위는 결국 축구라는 거대한 생태계(生態界)를 죽이는 길이다.
축구의 묘미는 팽팽한 긴장감과 경기 내내 파도치듯 밀려왔다 쓸려가는 치열한 연속성에 있다. 우리는 보장된 시간을 끊고 난폭하게 침입하는 광고를 위해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예외적인 환경에서 수분보충이 필요하다면 물을 마시며 쉬는 모습까지도 팬들은 볼 권리가 있다. 90분간 쉼없이 펼쳐지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그 속에 담긴 열정(熱情)을 보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이제 축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48개국, 64개국이라는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 경쟁의 밀도를 회복해야 한다. 광고를 위해 축구의 묘미를 훼손하는 마이너스 규정을 철폐하고, 축구 본연의 정체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 순수마저 상술로 활용한다면, 머지않아 팬들은 거대한 상업의 탑을 무너뜨릴 것이다. 방향을 잃은 축구는 결국 길을 잃게 마련이다. 지금이야말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목소리를 높여 ‘축구’ 그 자체를 회복해야 할 때다.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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