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외래어 오용: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
앞에서 “영어단어처럼 생긴 잡탕말”에 관해 쓴 글을 읽고 미국에서 영어를 강의했던 학자와 국내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원로교수가 똑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일본식 영어.외래어 조어(造語) 탓이라는 것이다. 일제 식민통치는 35년이었지만 그 잔재와 영향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아 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외래어 오용과 관련한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보고 싶다. 첫째, ‘모찌’와 ‘오뎅’ 등 일본어를 우리말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 둘째, 일본인들은 발음하기 어려워도 우리는 더 정확하게 소리낼 수 있는 ‘후라이’와 ‘비니루’ 등 일본식 영어.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 셋째, 외국어를 번역할 때 ‘로 인해’와 ‘로부터’ 등 일본어투를 쓰는 것.
일본어 그대로 쓰기
난 일제 식민통치가 끝난 1945년에서 10년이 지난 뒤에 태어나 1960-70년대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무렵 입에 달고 살았던 말들이 일본어인 줄 나중에 알았다. 의식주 일상생활에서 내가 직접 쓰거나 흔히 들었던 말만 꼽아도 다음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마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80-90년대에 우리말로 많이 고쳐진 것 같지만, 지금까지 널리 쓰이는 말이 적지 않다.
첫째, 옷.신발과 관련해: 나이롱(나일론.nylon), 우와기(웃옷.겉옷), 쓰봉.즈봉(바지), 와이셔츠.와이샤쓰(white shirt), 에리(옷깃.collar), 호꾸.호쿠(갈고리.hook), 작꾸(지퍼.zipper), 난닝구.란닝구(running shirt), 잠바(jumper), 오바(overcoat), 가다마이.마이(양복), 기지바지(양복바지), 메리야스.메리야쓰(속옷.medias), 몸뻬(작업바지), 빤쓰(팬티.panties), 소데나시.나시(민소매), 쓰레파.쓰레빠(슬리퍼.실내화.slipper).....
위에서 ‘나이롱’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탄력적인 합성섬유 ‘나일론(nylon)’에서 왔다. 앞으로 자세히 다룰 텐데 일본인들은 ‘김치’를 ‘기무치’로, ‘슬리퍼(slipper)’를 ‘쓰레빠’, ‘밀크(milk)’를 ‘미루꾸’로 발음하기 쉽듯, 받침 있는 말을 잘 소리내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나일론’을 잘 발음할 수 있는데도 일본인들이 쓰는 ‘나이롱’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나일론’이 천연.진짜 섬유가 아니라 인조.가짜 섬유라서, 우리 사회에선 ‘가짜’라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으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뒤차와 가벼운 접촉사고만 나도 병원에 가서 1-2주 치료받는 체하는 ‘나이롱환자’처럼 말이다.
‘호꾸.호쿠’는 1960-70년대 중고생들 교복 ‘우와기’의 빳빳한 ‘에리’ 안에 하얀 플라스틱 받침을 대고 양쪽 ‘에리’를 연결하는 쇠고리다.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청소년들에게 목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끔찍한 일제 잔재였다. ‘소데나시’는 소매(소데)가 없다(나시)는 뜻이라는데, 이를 줄여 ‘나시’라고만 쓰는 경우가 많다. 소매를 생략하고 없는 것만 드러내는 셈이니 어이없는 축약어다.
둘째, 음식.취사와 관련해: 벤또(도시락), 우동, 짬뽕, 다꽝(단무지), 다마네기(양파), 다대기(다진 양념), 모찌(찹쌀떡), 오뎅(어묵), 뎀뿌라(튀김), 앙꼬(팥소), 야끼만두(군만두), 스시(초밥), 사시미(생선회), 돈까스.돈가스(pork cutlet), 비후까스.비후가스(beef cutlet), 함박스텍.스테이크(hamburger steak), 사라다(샐러드.salad), 오므라이스(omelet + rice), 고로께.고로케(croquette), 오꼬시(강정), 센베이(전병), 미루꾸 카라멜(milk caramel), 미깡(밀감), 아이스케키.께끼(ice cake), 고뿌(잔.cup), 사라(접시), 와리바시(나무젓가락), 요지(이쑤시개), 간스메(통조림), 깡기리(깡통따개), 마호병(보온병), 후라이판(fry pan), 쿠킹호일(은박지.foil), 스뎅(stainless steel) 그릇, 시야시.히야시(냉각).....
난 ‘돈까스’를 즐겨먹는 편이다. 음식은 꽤 좋아하지만 이름은 몹시 싫어한다.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왜색(倭色) 짙은 조어이기 때문이다. ‘돈까스’는 영어 ‘pork cutlet’에서 왔다. ‘pork’는 돼지고기를 뜻하기에 돼지 ‘돈(豚)’을 앞세우고, ‘얇게 저민 고기’를 가리키는 ‘cutlet’은 ‘카쓰’로 줄여 만든 일본어 ‘돈카쓰’를 우리가 ‘돈까스’로 수입해 써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돈가스’로 올라있지만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돈까스’로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 ‘beef cutlet’은 일본인들이 쇠고기(beef)를 가리키는 소 ‘우(牛)’를 앞세워 ‘우카쓰’로 했음 직한데 ‘비프’를 ‘비후’로 발음해 ‘비후까스’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나중에 다시 다룰 텐데 일본인들은 알파벳 ‘f’를 ‘ㅍ’보다 ‘ㅎ’에 가깝게 소리낸다. 위에 든 사례 가운데서 ‘beef’를 ‘비프’ 아닌 ‘비후’로, ‘fry’를 ‘프라이’ 아닌 ‘후라이’로, ‘foil’을 ‘포일’ 아닌 ‘호일’로 발음하듯 말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father’를 ‘화더’로 발음하는 바람에, 옛날 혀짧은 한문 선생이 바람 ‘풍(風)’자를 가르치며, “난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람 풍 해라”고 했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공부한 기억이 떠오른다.
‘함박스텍.스테이크’란 말은 좀 엉뚱하다. 영어 ‘hamberger steak’을 발음하면 ‘햄버거 스테잌’으로, 독어 ‘Hamburg steak’이라면 ‘함부르크 스테잌’에 가까울 텐데, ‘햄버거’나 ‘함부르크’를 ‘함박’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밀크(milk)’를 ‘미루꾸’로, ‘컵(cup)’을 ‘고뿌’로, ‘검(gum)’을 ‘고무’로, ‘크림(cream)’을 ‘구리무’로, 드럼(drum)’을 ‘도라무’로, ‘트럭(truck)’을 ‘도라꾸’로, ‘백(back)’을 ‘빠꾸’로, ‘비닐.바이닐(vinyl)’을 ‘비니루’로, ‘타일(tile)’을 ‘타이루’로, ‘배낭.륙색(rucksack)’을 ‘리꾸사꾸’로 발음하는 등 음절을 늘려 쓰기 마련인데, ‘햄버거’나 ‘함부르크’를 ‘함박’으로 음절을 줄인 건 그들 언어관습과 반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추억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박사과정 밟을 때 일본인 친구와 연구실을 나누어 썼다. 아침 일찍 도시락 두 개 챙겨 학교 갔다 자정 무렵 집에 돌아가는 바람에 아내가 저녁밥 함께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참에 일본인 친구가 연구실에서 저녁밥을 같이 해먹자고 제안했다. 자기가 쌀밥을 책임질 테니 나더러 ‘기무치’를 가져올 수 있겠느냐며. 내가 그에게 ‘기무치’ 하지 말고 ‘김치’라 불러보라고 했다. 못했다. “야, 나 따라해. 김”, “김”. “치”, “치”. “김치”, “기무치”. 한 음절씩 따라 하면 “김”“치”라고 발음하면서 두 음절 붙여 소리내면 “기무치”로 변했다.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허사였다. 이런 일본인들 외래어 발음까지 우리가 따라해야 할까.
‘사라다(salad)’나 ‘오무라이스(omelet)’는 앞의 ‘나이롱(nylon)’처럼 일본인들이 알파벳 ‘l’을 ‘r’처럼 소리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2주 전 <국적 불명 ‘잡탕말’>에서 썼듯, 알파벳 ‘l’은 우리말 ‘ㄹ’을 두 번 소리내듯 해야 하니 ‘샐러드’, ‘오믈렛’, ‘나일론’ 등으로 발음.표기하는 게 더 정확한데, 우리도 일본사람들의 잘못된 발음까지 그대로 흉내내는 꼴 아닌가.
‘스뎅(stainless steel) 그릇’이야말로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말이다. ‘녹슬지 않은 철(stainless steel)로 만든 그릇’을 가리키는데 ‘녹’만 살리고 ‘슬지 않은 철’은 과감히 떼어내 버리는 바람에 ‘녹(스는) 그릇’이 돼버린 거다. 정반대로. 앞에서 소개한 ‘소데나시(민소매)’에서 ‘소데(소매)’를 잘라버리고 ‘나시’만 쓰는 꼴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우리는 일본인들의 어이없는 축약 조어를 참 잘 베껴써 왔다.
15. 외래어 오용: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 (2)
‘미싱’은 앞에서 소개한 ‘스뎅’만큼 어이없는 말이다. ‘재봉(바느질)하는 기계’라는 뜻의 ‘sewing machine’에서 정작 ‘sewing(재봉.바느질)’은 떼버리고 ‘machine(기계)’만 남겨 ‘미싱’으로 부르면서 ‘재봉틀’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오라이’는 우리 삶의 애환이 담긴 말이다. ‘모두 괜찮다’는 뜻을 지닌 영어 ‘all right’을 일본식으로 ‘오라이’라고 발음.표기한 건데, 버스 안내가 기사에게 ‘출발’을 알리는 말이었다.
전문 읽기: 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734
글로벌웹진 NEWSROH ‘이재봉의 평화세상’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jb&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C0%CC%C0%E7%BA%C0&sop=and
14. 외래어 오용: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
앞에서 “영어단어처럼 생긴 잡탕말”에 관해 쓴 글을 읽고 미국에서 영어를 강의했던 학자와 국내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원로교수가 똑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일본식 영어.외래어 조어(造語) 탓이라는 것이다. 일제 식민통치는 35년이었지만 그 잔재와 영향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아 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외래어 오용과 관련한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보고 싶다. 첫째, ‘모찌’와 ‘오뎅’ 등 일본어를 우리말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 둘째, 일본인들은 발음하기 어려워도 우리는 더 정확하게 소리낼 수 있는 ‘후라이’와 ‘비니루’ 등 일본식 영어.외래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 셋째, 외국어를 번역할 때 ‘로 인해’와 ‘로부터’ 등 일본어투를 쓰는 것.
일본어 그대로 쓰기
난 일제 식민통치가 끝난 1945년에서 10년이 지난 뒤에 태어나 1960-70년대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무렵 입에 달고 살았던 말들이 일본어인 줄 나중에 알았다. 의식주 일상생활에서 내가 직접 쓰거나 흔히 들었던 말만 꼽아도 다음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마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80-90년대에 우리말로 많이 고쳐진 것 같지만, 지금까지 널리 쓰이는 말이 적지 않다.
첫째, 옷.신발과 관련해: 나이롱(나일론.nylon), 우와기(웃옷.겉옷), 쓰봉.즈봉(바지), 와이셔츠.와이샤쓰(white shirt), 에리(옷깃.collar), 호꾸.호쿠(갈고리.hook), 작꾸(지퍼.zipper), 난닝구.란닝구(running shirt), 잠바(jumper), 오바(overcoat), 가다마이.마이(양복), 기지바지(양복바지), 메리야스.메리야쓰(속옷.medias), 몸뻬(작업바지), 빤쓰(팬티.panties), 소데나시.나시(민소매), 쓰레파.쓰레빠(슬리퍼.실내화.slipper).....
위에서 ‘나이롱’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탄력적인 합성섬유 ‘나일론(nylon)’에서 왔다. 앞으로 자세히 다룰 텐데 일본인들은 ‘김치’를 ‘기무치’로, ‘슬리퍼(slipper)’를 ‘쓰레빠’, ‘밀크(milk)’를 ‘미루꾸’로 발음하기 쉽듯, 받침 있는 말을 잘 소리내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나일론’을 잘 발음할 수 있는데도 일본인들이 쓰는 ‘나이롱’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나일론’이 천연.진짜 섬유가 아니라 인조.가짜 섬유라서, 우리 사회에선 ‘가짜’라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으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뒤차와 가벼운 접촉사고만 나도 병원에 가서 1-2주 치료받는 체하는 ‘나이롱환자’처럼 말이다.
‘호꾸.호쿠’는 1960-70년대 중고생들 교복 ‘우와기’의 빳빳한 ‘에리’ 안에 하얀 플라스틱 받침을 대고 양쪽 ‘에리’를 연결하는 쇠고리다.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청소년들에게 목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끔찍한 일제 잔재였다. ‘소데나시’는 소매(소데)가 없다(나시)는 뜻이라는데, 이를 줄여 ‘나시’라고만 쓰는 경우가 많다. 소매를 생략하고 없는 것만 드러내는 셈이니 어이없는 축약어다.
둘째, 음식.취사와 관련해: 벤또(도시락), 우동, 짬뽕, 다꽝(단무지), 다마네기(양파), 다대기(다진 양념), 모찌(찹쌀떡), 오뎅(어묵), 뎀뿌라(튀김), 앙꼬(팥소), 야끼만두(군만두), 스시(초밥), 사시미(생선회), 돈까스.돈가스(pork cutlet), 비후까스.비후가스(beef cutlet), 함박스텍.스테이크(hamburger steak), 사라다(샐러드.salad), 오므라이스(omelet + rice), 고로께.고로케(croquette), 오꼬시(강정), 센베이(전병), 미루꾸 카라멜(milk caramel), 미깡(밀감), 아이스케키.께끼(ice cake), 고뿌(잔.cup), 사라(접시), 와리바시(나무젓가락), 요지(이쑤시개), 간스메(통조림), 깡기리(깡통따개), 마호병(보온병), 후라이판(fry pan), 쿠킹호일(은박지.foil), 스뎅(stainless steel) 그릇, 시야시.히야시(냉각).....
난 ‘돈까스’를 즐겨먹는 편이다. 음식은 꽤 좋아하지만 이름은 몹시 싫어한다.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왜색(倭色) 짙은 조어이기 때문이다. ‘돈까스’는 영어 ‘pork cutlet’에서 왔다. ‘pork’는 돼지고기를 뜻하기에 돼지 ‘돈(豚)’을 앞세우고, ‘얇게 저민 고기’를 가리키는 ‘cutlet’은 ‘카쓰’로 줄여 만든 일본어 ‘돈카쓰’를 우리가 ‘돈까스’로 수입해 써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돈가스’로 올라있지만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돈까스’로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 ‘beef cutlet’은 일본인들이 쇠고기(beef)를 가리키는 소 ‘우(牛)’를 앞세워 ‘우카쓰’로 했음 직한데 ‘비프’를 ‘비후’로 발음해 ‘비후까스’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나중에 다시 다룰 텐데 일본인들은 알파벳 ‘f’를 ‘ㅍ’보다 ‘ㅎ’에 가깝게 소리낸다. 위에 든 사례 가운데서 ‘beef’를 ‘비프’ 아닌 ‘비후’로, ‘fry’를 ‘프라이’ 아닌 ‘후라이’로, ‘foil’을 ‘포일’ 아닌 ‘호일’로 발음하듯 말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father’를 ‘화더’로 발음하는 바람에, 옛날 혀짧은 한문 선생이 바람 ‘풍(風)’자를 가르치며, “난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람 풍 해라”고 했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공부한 기억이 떠오른다.
‘함박스텍.스테이크’란 말은 좀 엉뚱하다. 영어 ‘hamberger steak’을 발음하면 ‘햄버거 스테잌’으로, 독어 ‘Hamburg steak’이라면 ‘함부르크 스테잌’에 가까울 텐데, ‘햄버거’나 ‘함부르크’를 ‘함박’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밀크(milk)’를 ‘미루꾸’로, ‘컵(cup)’을 ‘고뿌’로, ‘검(gum)’을 ‘고무’로, ‘크림(cream)’을 ‘구리무’로, 드럼(drum)’을 ‘도라무’로, ‘트럭(truck)’을 ‘도라꾸’로, ‘백(back)’을 ‘빠꾸’로, ‘비닐.바이닐(vinyl)’을 ‘비니루’로, ‘타일(tile)’을 ‘타이루’로, ‘배낭.륙색(rucksack)’을 ‘리꾸사꾸’로 발음하는 등 음절을 늘려 쓰기 마련인데, ‘햄버거’나 ‘함부르크’를 ‘함박’으로 음절을 줄인 건 그들 언어관습과 반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추억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박사과정 밟을 때 일본인 친구와 연구실을 나누어 썼다. 아침 일찍 도시락 두 개 챙겨 학교 갔다 자정 무렵 집에 돌아가는 바람에 아내가 저녁밥 함께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참에 일본인 친구가 연구실에서 저녁밥을 같이 해먹자고 제안했다. 자기가 쌀밥을 책임질 테니 나더러 ‘기무치’를 가져올 수 있겠느냐며. 내가 그에게 ‘기무치’ 하지 말고 ‘김치’라 불러보라고 했다. 못했다. “야, 나 따라해. 김”, “김”. “치”, “치”. “김치”, “기무치”. 한 음절씩 따라 하면 “김”“치”라고 발음하면서 두 음절 붙여 소리내면 “기무치”로 변했다.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허사였다. 이런 일본인들 외래어 발음까지 우리가 따라해야 할까.
‘사라다(salad)’나 ‘오무라이스(omelet)’는 앞의 ‘나이롱(nylon)’처럼 일본인들이 알파벳 ‘l’을 ‘r’처럼 소리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2주 전 <국적 불명 ‘잡탕말’>에서 썼듯, 알파벳 ‘l’은 우리말 ‘ㄹ’을 두 번 소리내듯 해야 하니 ‘샐러드’, ‘오믈렛’, ‘나일론’ 등으로 발음.표기하는 게 더 정확한데, 우리도 일본사람들의 잘못된 발음까지 그대로 흉내내는 꼴 아닌가.
‘스뎅(stainless steel) 그릇’이야말로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말이다. ‘녹슬지 않은 철(stainless steel)로 만든 그릇’을 가리키는데 ‘녹’만 살리고 ‘슬지 않은 철’은 과감히 떼어내 버리는 바람에 ‘녹(스는) 그릇’이 돼버린 거다. 정반대로. 앞에서 소개한 ‘소데나시(민소매)’에서 ‘소데(소매)’를 잘라버리고 ‘나시’만 쓰는 꼴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우리는 일본인들의 어이없는 축약 조어를 참 잘 베껴써 왔다.
15. 외래어 오용: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 (2)
‘미싱’은 앞에서 소개한 ‘스뎅’만큼 어이없는 말이다. ‘재봉(바느질)하는 기계’라는 뜻의 ‘sewing machine’에서 정작 ‘sewing(재봉.바느질)’은 떼버리고 ‘machine(기계)’만 남겨 ‘미싱’으로 부르면서 ‘재봉틀’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오라이’는 우리 삶의 애환이 담긴 말이다. ‘모두 괜찮다’는 뜻을 지닌 영어 ‘all right’을 일본식으로 ‘오라이’라고 발음.표기한 건데, 버스 안내가 기사에게 ‘출발’을 알리는 말이었다.
전문 읽기: 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734
글로벌웹진 NEWSROH ‘이재봉의 평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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