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秋夕)이라고 해서, 나야 뭐 별 다를 것이 없겠지만, 녀석들이라도 추석처럼 먹어보라고 늘 주던 옥수수에 당근, 오이 그리고 사과를 곁들여 주었습니다.
추석상을 받고는 녀석들이 신이 난듯 합니다. 괜히 보는 나도 풍성해 지는 듯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녀석들이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 구분이 전혀 안 되지만 아내는 녀석들에게 이름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할매, 투덜이, 깝순이, 땡땡이… 하지만 녀석들 이름 중 최고봉은 역시 ‘금순이’ 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할매나 깝순이 뿐 아니라 누가 건드리고 덤벼들어도 결코 흔들림 없이 먹이 먹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녀석들이 다 먹고 가버리고 난 후까지도 혼자 남아 ‘굳세게‘ 끝까지 깨끗이 먹고 가기 때문입니다. 해서 녀석의 이름을 ‘굳세어라 금순이‘라고 아내가 지어 준 것입니다.
추석연휴라고 고향 부모 친척들을 찾았다는 소식들을 접합니다. 명절이라고 하니 잠시 멈춰서서 숨도 돌리고 쉼도 얻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 오거든 검찰 법원 개혁, 내란범죄 척결, 민주 평화 통일 한민족을 이루는 길에 다시 전념 합시다. 결코 멈추거나 포기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굳세어라 대한민국!!!”
***************************************
새 학년(2025-2026)이 시작되면서 이곳 교육감(superintendent)이 내 스쿨 버스 노선의 일부를 변경 했습니다.
물론 스쿨 버스 노선은 버스 회사가 관할하는 것이지만 최종결정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는지라 이십여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교육감 캔다이스가 “Chang에게 그 노선을 맡겨”라고 말하면 버스회사로서는 이견(異見)을 낼 수 없는 것이 이곳 스쿨 버스의 권력(?)구조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지난 수년간 그 노선에서 늘 말썽이 있었고 그로 인해 학교도 회사도 곤란을 겪었던지라 ‘그 노선 담당을 Chang으로 바꿔’라는 교육감의 결정에 학교도 회사도 은근히 좋아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수년간 늘 그 노선에서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문제의 노선에 들어가 보니 그럴 만도 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노선의 이전 운전자는 내 나이 또래의 백인 남자인데, 문제는 그 노선의 대부분이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인디아, 파키스탄, 중국, 아프리카, 베트남, 남미계 가정들인데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꼬맹이들의 얼굴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종이 다르다 보니 백인인 전임 운전자의 눈에는 중국이나 베트남, 인디아나 아프카니스탄, 남 아프리카(South Africa)나 가나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아이들 얼굴이 헷갈리게 되었고, 더욱이 아이들 이름이 익숙한 발음이 아닌지라 (알랴, 휴이리, 수반, 암마, 리울리, 비바니, 무가가...) 아이들 이름 외우기를 포기했고, 그 결과 아이 부모들에 대한 확인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스쿨 버스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운전자가 웬만한 일들은 직접 관리를 해야 하는데 아이들 이름을 모르니 학교까지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교사들이 스쿨 버스에 올라와 정리를 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것이며 이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리포트(School Bus Incident Report)를 작성해야 했고, 그로인한 번거로운 후속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수년간 지속 되자 마침내 교육감이 그 노선을 내게 맡겼던 것입니다.
솔직히 나 역시 꼬맹이들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꼬맹이들 이름을 직접 손으로 써서 운전석 옆에 붙여 놓고 매일 아이들이 타고 내릴 때 마다 한명씩 이름을 불러 주었던 결과 (한 곳에서 스무 명 넘게 줄지어 스쿨 버스를 타고 내리게 되면 많이 헷갈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 노선 운행을 시작한지 두 주가 채 되지 않아 마침내 오십여명 되는 꼬맹이들 이름을 모두 외워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명씩 이름을 불러주며 꼬맹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우는 내 모습을 보고는 파키스탄 아이의 엄마가 놀라는 모습으로 ‘아이들 이름을 다 알아요?’라고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Of course, I have to"
이름은 그저 글자나 소리가 아닙니다. 이름은 기억이며 그 기억 속에 담겨진 모습인 것입니다. 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면 그 이름으로 불려 졌던 누군가의 모습, 그들의 삶이 되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추석에 별 관심두지 않는 곳에 살고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달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보면 추석이라는 날과 함께 여러 이름들이 가슴을 맴돕니다. 내 곁을 스쳐간 이들의 이름들, 사랑했던 이들, 먼저 떠난 가족들, 안타까운 이름들, 잊지 말아야 할 삶들....
윤동주 시인은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라고 했다지만, 이번 추석 나는 내가 불러야 할 이름들 곁에 ‘노회찬’선생의 이름을 더해 봅니다.
언젠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때가 온다면, 그들에게 내 이름은 어떤 삶의 모습으로 비춰지게 될지, 근심하며 엎드려 절하는 추석입니다.
삯꾼 장호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hjac
추석(秋夕)이라고 해서, 나야 뭐 별 다를 것이 없겠지만, 녀석들이라도 추석처럼 먹어보라고 늘 주던 옥수수에 당근, 오이 그리고 사과를 곁들여 주었습니다.
추석상을 받고는 녀석들이 신이 난듯 합니다. 괜히 보는 나도 풍성해 지는 듯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녀석들이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 구분이 전혀 안 되지만 아내는 녀석들에게 이름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할매, 투덜이, 깝순이, 땡땡이… 하지만 녀석들 이름 중 최고봉은 역시 ‘금순이’ 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할매나 깝순이 뿐 아니라 누가 건드리고 덤벼들어도 결코 흔들림 없이 먹이 먹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녀석들이 다 먹고 가버리고 난 후까지도 혼자 남아 ‘굳세게‘ 끝까지 깨끗이 먹고 가기 때문입니다. 해서 녀석의 이름을 ‘굳세어라 금순이‘라고 아내가 지어 준 것입니다.
추석연휴라고 고향 부모 친척들을 찾았다는 소식들을 접합니다. 명절이라고 하니 잠시 멈춰서서 숨도 돌리고 쉼도 얻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 오거든 검찰 법원 개혁, 내란범죄 척결, 민주 평화 통일 한민족을 이루는 길에 다시 전념 합시다. 결코 멈추거나 포기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굳세어라 대한민국!!!”
***************************************
새 학년(2025-2026)이 시작되면서 이곳 교육감(superintendent)이 내 스쿨 버스 노선의 일부를 변경 했습니다.
물론 스쿨 버스 노선은 버스 회사가 관할하는 것이지만 최종결정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는지라 이십여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교육감 캔다이스가 “Chang에게 그 노선을 맡겨”라고 말하면 버스회사로서는 이견(異見)을 낼 수 없는 것이 이곳 스쿨 버스의 권력(?)구조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지난 수년간 그 노선에서 늘 말썽이 있었고 그로 인해 학교도 회사도 곤란을 겪었던지라 ‘그 노선 담당을 Chang으로 바꿔’라는 교육감의 결정에 학교도 회사도 은근히 좋아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수년간 늘 그 노선에서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문제의 노선에 들어가 보니 그럴 만도 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노선의 이전 운전자는 내 나이 또래의 백인 남자인데, 문제는 그 노선의 대부분이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인디아, 파키스탄, 중국, 아프리카, 베트남, 남미계 가정들인데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꼬맹이들의 얼굴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종이 다르다 보니 백인인 전임 운전자의 눈에는 중국이나 베트남, 인디아나 아프카니스탄, 남 아프리카(South Africa)나 가나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아이들 얼굴이 헷갈리게 되었고, 더욱이 아이들 이름이 익숙한 발음이 아닌지라 (알랴, 휴이리, 수반, 암마, 리울리, 비바니, 무가가...) 아이들 이름 외우기를 포기했고, 그 결과 아이 부모들에 대한 확인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스쿨 버스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운전자가 웬만한 일들은 직접 관리를 해야 하는데 아이들 이름을 모르니 학교까지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교사들이 스쿨 버스에 올라와 정리를 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것이며 이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리포트(School Bus Incident Report)를 작성해야 했고, 그로인한 번거로운 후속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수년간 지속 되자 마침내 교육감이 그 노선을 내게 맡겼던 것입니다.
솔직히 나 역시 꼬맹이들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꼬맹이들 이름을 직접 손으로 써서 운전석 옆에 붙여 놓고 매일 아이들이 타고 내릴 때 마다 한명씩 이름을 불러 주었던 결과 (한 곳에서 스무 명 넘게 줄지어 스쿨 버스를 타고 내리게 되면 많이 헷갈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 노선 운행을 시작한지 두 주가 채 되지 않아 마침내 오십여명 되는 꼬맹이들 이름을 모두 외워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명씩 이름을 불러주며 꼬맹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우는 내 모습을 보고는 파키스탄 아이의 엄마가 놀라는 모습으로 ‘아이들 이름을 다 알아요?’라고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Of course, I have to"
이름은 그저 글자나 소리가 아닙니다. 이름은 기억이며 그 기억 속에 담겨진 모습인 것입니다. 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면 그 이름으로 불려 졌던 누군가의 모습, 그들의 삶이 되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추석에 별 관심두지 않는 곳에 살고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달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보면 추석이라는 날과 함께 여러 이름들이 가슴을 맴돕니다. 내 곁을 스쳐간 이들의 이름들, 사랑했던 이들, 먼저 떠난 가족들, 안타까운 이름들, 잊지 말아야 할 삶들....
윤동주 시인은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라고 했다지만, 이번 추석 나는 내가 불러야 할 이름들 곁에 ‘노회찬’선생의 이름을 더해 봅니다.
언젠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때가 온다면, 그들에게 내 이름은 어떤 삶의 모습으로 비춰지게 될지, 근심하며 엎드려 절하는 추석입니다.
삯꾼 장호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hj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