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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금강산유점사 복원은 남북의 소명”

2024-11-30

조계종 민추본, 남북불교문화유산 교류포럼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남북이 신계사 복원을 해낸 것처럼 유점사도 복원해야 합니다.” (박상준 연구관)

“금강산 최초의 사찰 유점사 복원은 역사의 복원입니다.” (이경순 연구사)

“유점사 복원은 남북 불교와 평화의 가치를 제고하는 길입니다.” (허정필 교수)

“유점사 53불신앙을 비롯한 찬란한 불교문화의 역사를 찾아야 합니다.” (유근자 교수)

 

천하명산 금강산(金剛山) 제1의 가람(伽藍), 부처님 시대 53불(佛)의 창건설화가 깃든 유점사(楡岾寺)의 복원을 위한 학술포럼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29일 개최되었다. ‘금강산 유점사 복원, 학제적 접근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한 이날 행사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태효스님)가 지난해 9월 발족한 남북불교문화유산 교류연구위원회의 첫 포럼으로 마련했다.



민추본 사무총장 덕유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유점사의 가치를 발굴해서 복원에 대한 의지와 관심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민추본은 남북관계 위기상황과 상관없이 남북불교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피력했다.

 

이어 좌장을 맡은 최태선 중앙승가대 교수의 진행으로 모두 4가지 발제와 토론이 펼쳐졌다. 박상준 불교문화유산연구소 연구관은 ‘금강산 유점사 복원의 의미와 가능성 : 신계사 복원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제 발표를 했고, ‘금강산 유점사 복원의 의미와 과제’를 놓고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불교사적 측면을, 허정필 동국대북한학연구소 대우교수가 지정학적 측면을, 유근자 국립순천대 연구교수가 문화사적 측면을 각각 발표했다.

 

토론은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와 김성연 동국대 K학술확산연구소 연구초빙교수, 이현수 불교문화유산연구소 팀장이 이어나갔다.

 


제1주제 발표에서 박상준 연구관은 1999년 시작된 불교계의 남북문화교류 역사를 돌아보고 약 7년에 걸친 금강산 신계사의 복원 과정을 사진과 도표 등 상세한 자료를 곁들이며 짚어나갔다.

 

당시 총무원 문화부 문화재팀장으로 참여했던 박 연구관은 “신계사 복원은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사찰과 불교역사의 복원이자 복원과정 자체가 남북교류 확대에 큰 도움을 주었다”며 남북이 함께 한 복원기원법회(2001.4) 금강산등달기(2002.12) 조계종과 조불련 복원 합의(2003.10) 복원 불사(2004-2007) 등 공동발굴조사, 전통목조건축 복원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이경순 연구사는 ‘유점사 복원의 의미와 과제-불교사적 측면’에서 고려 문신 민지(閔漬)의 <금강산 유점사 사적기>(1297)에 나타난 53불상과 유점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논하며 “유점사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기 62년전인 기원후 4년 창건설이 있다. 이는 고려의 주체적인 민족사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점사는 금강산 최초의 사찰이며 80화엄경보살주처신앙과 53불신앙 등 금강산 신앙의 중심도량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경순 연구사는 “유점사는 고려후기부터 조선말까지 왕실지원이 끊이지 않은 영험한 사찰, 임진왜란당시 승군을 모집한 호국사찰, 청허계 사명파와 편양파의 전통, 31본산중 금강산을 대표하는 대본산, 근대시기까지 금강산 유람과 관광의 거점, 한국전쟁시 남북격전의 장소라는 다양한 역사에서 무엇을, 어떻게 복원할 것이냐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점사 복원의 의미와 과제-지정학적 측면’에서 허정필 교수는 “유점사 복원을 왜 지금 논의해야 하는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풀기는 너무 어렵다. 그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도 유점사의 복원 가치는 너무나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개성공단과 신계사 복원 사례를 들고 “유점사 터는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불과 12km 떨어져 있고 남한 최북단사찰 건봉사는 30km 거리다. 생태계 관리와 지역평화 및 개발, 남북불교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협의가 시급하다”며 금강산 불교문화유산 공동관리를 위한 남북 TF 구성을 제안했다.

 


유근자 교수는 ‘유점사 복원의 의미와 과제-문화사적 측면’에서 유점사 53불과 우전왕 전단서상래의기를 비롯한 유물들을 통해 유점사 문화유산의 역사를 돌이켰다. 유점사 사적기와 월정사 사적, 사진으로 남아있는 유점사 9층석탑과 월정사 9층탑의 유사성, 유점사 법기보살(法起菩薩)과 월정사 문수신앙(文殊信仰)을 대비한 연구로 시선을 끌었다.

 

또한 유점사에 소장되었던 인목왕후의 보문품경(1912년 촬영)과 안성 칠장사의 인목대비 관음경을 비교하고 유점사에서 임진왜란을 맞은 송운대사의 유물, 유점사의 승탑원, 한국전쟁이후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진 유점사 대종 등을 소개했다.

 


유근자 교수는 “1910년 일제하 궁내부 대신 민병석이 일본 통역관을 유점사에 보내 청동향로와 인도에서 53불상을 싣고온 중종(重腫), 진주방석, 앵무잔을 가져갔다. 이듬해 유점사 스님들이 가져간 보물들을 돌려달라고 청원서를 궁내부에 제출했지만 보물보관상여금 명목으로 550원을 줄뿐이었다”는 통탄할 기록도 들려주었다.

 

1916년 3월엔 유점사 53불 중 17위를 일제 약탈꾼에 의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중 9위는 개성에서 환수되었으나 실은 6위가 가짜로 바꿔치기 됐고 총 14위가 국내외로 암매(暗賣),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발견된 금동약사여래입상이 그중 하나로 밝혀졌다.

 


이날 포럼을 방청한 민추본의 황미라 회원은 “정성을 다해 발제하고 같은 마음으로 토론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많이 배웠다. 유점사가 복원되는 그날을 민추본과 함께 공덕을 쌓는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내금강 유점사(楡岾寺)는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남해왕 원년(4)에 창건되었고 53불(佛)의 연기(緣起)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12세기 중엽에는 500여 칸, 15세기 초에는 3,000칸의 승방을 가진 규모로 확장되었으며, 조선 말엽까지 49번의 크고 작은 화재를 겪었다. 1911년 이후에는 63개 말사를 둔 대찰로 능인보전, 약사전, 산영루(山映樓) 등 6전(殿) 4당(堂) 3루(樓) 7각(閣) 3문(門)과 20여 동의 부속건물, 석등, 구층석탑이 있었다. 1951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동종은 1974년에 묘향산 보현사 종각으로 옮겨졌다.

 


다음은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 나타난 창건설화 내용.

 

<석가가 열반한 후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사위성(舍衛城)에서 설법을 이어갔는데, 석가가 재세(在世)할 때 석가를 뵙지 못한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상을 주조하라고 하면서 종도 하나 주조하게 했다는 것이다. 수없이 만들어진 불상 중에 53구를 선별했는데 문수보살은 이 불상들을 종에 넣고, 이 내용을 글로 적은 후 덮개를 주조해서 덮고 바다에 띄워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의 스승이신 석가모니의 53불상은 인연이 있는 국토에 가서 머무르고 나 역시 그곳에서 설법해서 말세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겠노라.”

 

종은 물에 떠가다가 신룡(神龍)을 만나 월지국(月氏國)에 도착했는데, 월지국왕 이름은 혁치(赫熾)였다. 혁치왕은 불상과 지문(誌文)을 발견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전각을 마련해서 봉안했는데, 갑자기 전각이 잿더미가 되었다. 왕이 다시 세우려 했으나 석가가 꿈에 나타나 “나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겠으니 왕은 나를 머무르게 하지 말라”고 말했다.

 

(혁치)왕은 놀라고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옛 종에 불상들을 안치하고 바다에 띄우면서 서원해서, “불상들과 종이 인연이 있는 국토를 향해 가소서. 나는 수천 명의 권속과 더불어 마땅히 불법을 수호하는 선신(善神)이 되어 항상 이를 옹호(擁護)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백금(白金)으로 따로 덮개를 만들어 이 서원을 종 안에 두고, 다시 옛 덮개로 그것을 덮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유점사에 월지왕(月氏王)의 사당이 있다.

 

종은 바다를 떠가며 여러 나라를 거쳐 금강산 동쪽의 안창현(安昌縣) 포구에 닿았는데, 이때가 신라 제2대 남해왕(南解王) 원년, 즉 한나라 평제(平帝) 원시(元始) 4년(기원후 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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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조계종민추본 평화통일도량 순례길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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