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사이》공직은퇴 후 새 세상을 품다—정유순 전 지방환경청장
기자명 유진상 大記者
- 입력: 2022.06.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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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2022.06.17 10:16
2005년 전주지방환경청장을 끝으로 환경부 은퇴
작가로 변신, 방방곡곡 누비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공직에서 물러난 지 17년 됐지만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를 만나 은퇴 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들어봤다. 유진상 大記者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만사가 편합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지 17년이 됐으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오랜만에 시내 커피숍에서 만난 정유순(74)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풍채가 여전하다는 인사말에 이렇게 답했다. 정 전 청장은 1968년 12월 공직에 입문, 37년 간 환경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강지방유역청 감시대장과 공보과장 등을 거쳐 2005년 전주지방환경청장(현 전북지방환경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환경부를 떠난 후 환경시설관리공사 등 민간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하기도 했다.
공보과장을 거친 인연으로 당시 환경부를 출입했던 기자들 몇 명과는 지금도 자주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이 나온 김에 당시 일화를 소환하자, 웃음으로 화답했다.
장관수행 땐 그가 장관인 줄로 착각도
노무현 정부시절 기자실 통·폐합으로 정부과천청사에서는 노동부, 환경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4개 부처가 같은 공간인 합동기자실을 사용했다. 출입처는 다르지만 생활공간이 같은 터라 친목과 단합을 위해 기사 마감 후 종종 족구경기를 했다. 어느 날 이 자리에 환경부 장관이 초대됐다.
기자들이 경기를 위해 모여있는 상황에서 정 전 청장(당시 공보과장)이 곽결호 장관을 안내하며 족구장으로 들어섰다. 이때 환경부 장관을 모르는 다른 부처 출입기자들이 모두 정 전 청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때 환경부 출입기자가 "그분이 아니고, 키 작은 분이 장관이셔~"라고 외쳤다. 당연히 족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풍채로 보면 누가 봐도 정 과장이 장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머가 넘쳤던 곽 장관은 이 말을 들은 뒤 정 과장한테,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정중히 인사를 건네 또 한번 웃음을 선사했다. 정 전 청장은 당시 일을 떠올리며 "그때 이미 장관 대접을 받았으니 여한이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인생 끝인 줄 아는데, 새로운 시작이다.
이승에서 사는 동안 시작과 끝은
어느 순간에도 연속이다.
공직은퇴 후 삶이 더 풍요로워 보이는데 후배 공직자들에게 참고될 만한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또 자연에 심취하게 된 동기와 지금까지 섭렵한 곳,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 청장은 마치 강의하듯 막힘없이 그간의 인생 여정을 들려줬다.
공직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여정의 시작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끝은 죽음이라고 말할 게 뻔하다. 하지만 죽음은 저승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이승에서 사는 동안의 시작과 끝은 어느 순간에도 연속이다. 끝이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인데 사람들은 시작보다 끝에 더 큰 방점을 찍으려고 한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끝인 줄 아는데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세상의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채워야 할 것들도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살아온 세상의 뒤를 돌아보며 ‘아직도 나는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에 동화되고자 열심히 탐방에 나서
세상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필연적으로 남의 신세를 진다. 내 가족, 이웃들과 만나서 사귀고, 대화를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항상 고마움을 전한다. 매일 똑같은 것을 봐도 항상 새롭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늘도 같이 있어줘 고맙다’고 자연에 고마움을 표한다. 욕심부리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건강해지고, 삶도 행복해지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 자연에 대한 경외감 느껴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땅이 고맙다. 또한 내가 바라볼 수 있는 하늘과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한없이 고맙다. 옆에만 있어줘도 고맙기 때문에 살아 있는 날까지 신세를 갚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공직을 그만두고 잠시 찾아온 공백기에 나를 무척 아껴 주시던 소설가 김주영씨의 권유로 그분과 함께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했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립공원은 원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낙원이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약육강식의 ‘처절한 장’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평화의 장’으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여행 중 값진 선물은 물의 소중함 깨달은 점
케냐의 ‘암보셀리’ 지역 안에 원주민인 마사이족은 소똥과 흙을 반죽하여 지은 집에서 산다. 어른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은 여느 종족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시는 샘물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샘에서 퍼 올린 물은 쌀 씻은 물처럼 흐렸으나 그들은 그 물로 마시고, 밥 짓고, 빨래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외지인이 마시면 설사나 배앓이를 하고, 수인성전염병이 자주 일어나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롭다고 한다.
그냥 눈으로 봐도 우리는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물이다. 그런 물도 부족하여 성인 남자들은 소‧양‧염소 등의 가축을 몰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물을 찾아다닌다. 피부가 검어 목욕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마 땟국에 절여진 것 같았다. 그 순간 왜 우리나라의 한강이 고마운지 새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분명 복 받은 사람이었다. 사파리 여행도 아름다운 추억이었지만 무엇보다 물에 대해 소중함을 깨닫게 된 점은 너무 값진 선물이었다.
물에 꽂혀 방방곡곡 걸으며 물줄기 섭렵
짧은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우리나라의 길을 따라 목포에서 김포까지 서해안을 따라 걸었다. 3·8선으로 막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서 휴전선 155마일을 서쪽에서부터 동쪽까지 걸었다.
그리고 부산의 오륙도 앞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지신밟기를 했다. 또 한강의 발원지 태백 검룡소에서 물길을 따라 걸었고, 태백 황지의 샘물을 따라 부산 다대포까지 낙동강 물 흐름을 따라 동행해 보았다.
태조 이성계의 극진한 기도로 조선을 창업하여 왕위를 뜬 전북 장수의 뜬봉샘을 출발한 물방울을 따라 금강을 누비고, 전북 진안의 대미샘에서 솟아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 걸어도 봤다.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일제강점기 때 쌀독에 감추었다가 해방 후에 이를 꺼내 알린 광양의 정병욱 가옥도 보았다.
역사가 녹아든 옛길 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담양의 용소(龍沼)에서 출발한 영산강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러브스토리와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 정도전이 3년간 귀양살이 하던 곳이다. 영산강 줄기인 나주 땅은 민본(民本) 사상을 깨우친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한라산·지리산·태백산·오대산·설악산 등 전국의 산자락 길을 대부분 걸어봤다. 함께 뛰어올랐다가 그대로 멈춰선 한려수도, 떠돌다가 동시에 제자리에 멈춰버린 다도해의 아름다움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 정부나 학계의 태도에 분노하기도 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뤘던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만주대륙을 걸으며,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고 역사와 문화가 함께 한 옛길을 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해봤다.
앞으로도 자연을 찾아 열심히 걷고, 또 걸을 터
많은 곳을 걸으면서 목적지에 다 왔나 싶어 뒤돌아보면 그곳이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도 해보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돌이켜 보면 보이는 것은 하얀 백지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려고 오늘도 세상 밖으로 걸어나왔지만 본 것도 보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세상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몸을 아끼면 아낀 만큼 몸속의 병이 깊어간다’는 점이다.
행만리로 독만권서(行萬里路 讀萬卷書). 만리를 걷는다는 것은 만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언제든 위대한 스승인 자연을 찾아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프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걷고 또 걸을 생각이다.
【정유순은】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대변인실 공보과장, 전주지방환경청장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국민권익신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신사와 서원을 따라’ 연재 중, 인터넷신문 에코저널에' 한강의 시원을 따라' 연재 중
저서) '우리가 버린 봄 여름 가을 겨울(2010)', '정유순의 세상걷기(2017)'
유진상 大記者 jsr792@public25.com
《이공사이》공직은퇴 후 새 세상을 품다—정유순 전 지방환경청장
기자명 유진상 大記者
2005년 전주지방환경청장을 끝으로 환경부 은퇴
작가로 변신, 방방곡곡 누비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공직에서 물러난 지 17년 됐지만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를 만나 은퇴 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들어봤다. 유진상 大記者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만사가 편합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지 17년이 됐으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오랜만에 시내 커피숍에서 만난 정유순(74)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풍채가 여전하다는 인사말에 이렇게 답했다. 정 전 청장은 1968년 12월 공직에 입문, 37년 간 환경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강지방유역청 감시대장과 공보과장 등을 거쳐 2005년 전주지방환경청장(현 전북지방환경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환경부를 떠난 후 환경시설관리공사 등 민간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하기도 했다.
공보과장을 거친 인연으로 당시 환경부를 출입했던 기자들 몇 명과는 지금도 자주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이 나온 김에 당시 일화를 소환하자, 웃음으로 화답했다.
장관수행 땐 그가 장관인 줄로 착각도
노무현 정부시절 기자실 통·폐합으로 정부과천청사에서는 노동부, 환경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4개 부처가 같은 공간인 합동기자실을 사용했다. 출입처는 다르지만 생활공간이 같은 터라 친목과 단합을 위해 기사 마감 후 종종 족구경기를 했다. 어느 날 이 자리에 환경부 장관이 초대됐다.
기자들이 경기를 위해 모여있는 상황에서 정 전 청장(당시 공보과장)이 곽결호 장관을 안내하며 족구장으로 들어섰다. 이때 환경부 장관을 모르는 다른 부처 출입기자들이 모두 정 전 청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때 환경부 출입기자가 "그분이 아니고, 키 작은 분이 장관이셔~"라고 외쳤다. 당연히 족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풍채로 보면 누가 봐도 정 과장이 장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머가 넘쳤던 곽 장관은 이 말을 들은 뒤 정 과장한테,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정중히 인사를 건네 또 한번 웃음을 선사했다. 정 전 청장은 당시 일을 떠올리며 "그때 이미 장관 대접을 받았으니 여한이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인생 끝인 줄 아는데, 새로운 시작이다.
이승에서 사는 동안 시작과 끝은
어느 순간에도 연속이다.
공직은퇴 후 삶이 더 풍요로워 보이는데 후배 공직자들에게 참고될 만한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또 자연에 심취하게 된 동기와 지금까지 섭렵한 곳,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 청장은 마치 강의하듯 막힘없이 그간의 인생 여정을 들려줬다.
공직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여정의 시작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끝은 죽음이라고 말할 게 뻔하다. 하지만 죽음은 저승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이승에서 사는 동안의 시작과 끝은 어느 순간에도 연속이다. 끝이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인데 사람들은 시작보다 끝에 더 큰 방점을 찍으려고 한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끝인 줄 아는데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세상의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채워야 할 것들도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살아온 세상의 뒤를 돌아보며 ‘아직도 나는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에 동화되고자 열심히 탐방에 나서
세상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필연적으로 남의 신세를 진다. 내 가족, 이웃들과 만나서 사귀고, 대화를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항상 고마움을 전한다. 매일 똑같은 것을 봐도 항상 새롭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늘도 같이 있어줘 고맙다’고 자연에 고마움을 표한다. 욕심부리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건강해지고, 삶도 행복해지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 자연에 대한 경외감 느껴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땅이 고맙다. 또한 내가 바라볼 수 있는 하늘과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한없이 고맙다. 옆에만 있어줘도 고맙기 때문에 살아 있는 날까지 신세를 갚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공직을 그만두고 잠시 찾아온 공백기에 나를 무척 아껴 주시던 소설가 김주영씨의 권유로 그분과 함께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했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립공원은 원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낙원이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약육강식의 ‘처절한 장’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평화의 장’으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여행 중 값진 선물은 물의 소중함 깨달은 점
케냐의 ‘암보셀리’ 지역 안에 원주민인 마사이족은 소똥과 흙을 반죽하여 지은 집에서 산다. 어른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은 여느 종족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시는 샘물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샘에서 퍼 올린 물은 쌀 씻은 물처럼 흐렸으나 그들은 그 물로 마시고, 밥 짓고, 빨래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외지인이 마시면 설사나 배앓이를 하고, 수인성전염병이 자주 일어나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롭다고 한다.
그냥 눈으로 봐도 우리는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물이다. 그런 물도 부족하여 성인 남자들은 소‧양‧염소 등의 가축을 몰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물을 찾아다닌다. 피부가 검어 목욕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마 땟국에 절여진 것 같았다. 그 순간 왜 우리나라의 한강이 고마운지 새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분명 복 받은 사람이었다. 사파리 여행도 아름다운 추억이었지만 무엇보다 물에 대해 소중함을 깨닫게 된 점은 너무 값진 선물이었다.
물에 꽂혀 방방곡곡 걸으며 물줄기 섭렵
짧은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우리나라의 길을 따라 목포에서 김포까지 서해안을 따라 걸었다. 3·8선으로 막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서 휴전선 155마일을 서쪽에서부터 동쪽까지 걸었다.
그리고 부산의 오륙도 앞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지신밟기를 했다. 또 한강의 발원지 태백 검룡소에서 물길을 따라 걸었고, 태백 황지의 샘물을 따라 부산 다대포까지 낙동강 물 흐름을 따라 동행해 보았다.
태조 이성계의 극진한 기도로 조선을 창업하여 왕위를 뜬 전북 장수의 뜬봉샘을 출발한 물방울을 따라 금강을 누비고, 전북 진안의 대미샘에서 솟아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 걸어도 봤다.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일제강점기 때 쌀독에 감추었다가 해방 후에 이를 꺼내 알린 광양의 정병욱 가옥도 보았다.
역사가 녹아든 옛길 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담양의 용소(龍沼)에서 출발한 영산강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러브스토리와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 정도전이 3년간 귀양살이 하던 곳이다. 영산강 줄기인 나주 땅은 민본(民本) 사상을 깨우친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한라산·지리산·태백산·오대산·설악산 등 전국의 산자락 길을 대부분 걸어봤다. 함께 뛰어올랐다가 그대로 멈춰선 한려수도, 떠돌다가 동시에 제자리에 멈춰버린 다도해의 아름다움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 정부나 학계의 태도에 분노하기도 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뤘던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만주대륙을 걸으며,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고 역사와 문화가 함께 한 옛길을 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해봤다.
앞으로도 자연을 찾아 열심히 걷고, 또 걸을 터
많은 곳을 걸으면서 목적지에 다 왔나 싶어 뒤돌아보면 그곳이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도 해보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돌이켜 보면 보이는 것은 하얀 백지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려고 오늘도 세상 밖으로 걸어나왔지만 본 것도 보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세상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몸을 아끼면 아낀 만큼 몸속의 병이 깊어간다’는 점이다.
행만리로 독만권서(行萬里路 讀萬卷書). 만리를 걷는다는 것은 만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언제든 위대한 스승인 자연을 찾아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프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걷고 또 걸을 생각이다.
【정유순은】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대변인실 공보과장, 전주지방환경청장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국민권익신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신사와 서원을 따라’ 연재 중, 인터넷신문 에코저널에' 한강의 시원을 따라' 연재 중
저서) '우리가 버린 봄 여름 가을 겨울(2010)', '정유순의 세상걷기(2017)'
유진상 大記者 jsr792@public2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