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의 도움으로 글을 쓰는 이들이 많습니다. 오늘 모바일 뉴스에서 네이버에 AI로 수백개의 기사를 생성해 광고 수익을 올리는 소위 ‘따발총’ 기사 이야기가 상위랭크 된 것을 보았습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NEWSROH)를 2010년 6월 창간하면서 “우수마발(牛溲馬勃 소오줌과 말똥처럼 가치없는 말과 글)의 뉴스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 세상의 유의미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한게 기억이 납니다.
하물며 AI가 생활화된 오늘날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맞다 해도 기사의 정확도는 얼마나 되는지 판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자를 비롯한 글쓰는 이들의 책임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일상을 파고든 AI를 활용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복수의 AI를 통해 정보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차이가 있거나 찜찜함이 남는다면 두 번 이상 확인을 해야 합니다. 저 자신 그런 경험을 자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지난해 타계한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을 놓고 어느 AI는 최근 92세 생일을 맞았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관련 정보를 첨부했지만 AI는 내가 잘못 알고 있다고 우기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영문 정보까지 첨부한 끝에야 AI의 정중한(?) 사과를 받았습니다.

오늘 4월 10일은 ‘신문왕’ 조셉 퓰리처(사진)가 탄생한 날입니다. 그런데 AI가 ‘저널리즘의 아버지’, ‘정론직필의 화신’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사실 저널리즘을 공부했거나 퓰리처의 생애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마냥 칭송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오늘날 '기레기' 논란의 원조 격인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은 처절한 부수 경쟁, 판매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퓰리처가 사용한 전략들은 지금 봐도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입니다.
첫째 자극적인 헤드라인입니다. 범죄, 스캔들,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를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둘째 선동과 왜곡입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며 전쟁 여론을 부채질했습니다. 이는 현대 언론학에서 "신문이 전쟁을 만들 수 있다"는 나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셋째 옐로 키드. 당시 인기 만화인 '옐로 키드'를 두고 허스트와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는데, 여기서 오늘날의 '황색 언론'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퓰리처가 '저널리즘의 롤모델'로 추앙받는 이유는 노년에 보여준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정부의 부패를 파헤치는 탐사 보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퓰리처는 "뉴스는 단순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천명했습니다. 특히 말년에 유언을 통해 컬럼비아 대학교에 신문방송학과를 설립하고 저 유명한 퓰리처상을 제정했습니다.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치며 세상소풍을 마친 것입니다.
초기의 그는 상업주의의 노예였고, 대중지 경쟁을 촉발해 언론의 질을 떨어뜨렸지만 말년의 그는 언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표준을 정립하고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퓰리처는 "현대 저널리즘의 명암을 모두 가진 인물"로 보는 것이 가장 공정합니다. 나아가 "언론의 사명을 일깨운 저널리즘의 거인" 정도의 표현이 더 적확(的確)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결론이 AI에게 문제제기를 하자 비로소 나왔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이기(利器)란게 그렇지 않은가요. 편한 만큼 잘못 쓰면 독이 됩니다. AI가 대세일수록, 사용자가 똑똑해야 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요즘 AI의 도움으로 글을 쓰는 이들이 많습니다. 오늘 모바일 뉴스에서 네이버에 AI로 수백개의 기사를 생성해 광고 수익을 올리는 소위 ‘따발총’ 기사 이야기가 상위랭크 된 것을 보았습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NEWSROH)를 2010년 6월 창간하면서 “우수마발(牛溲馬勃 소오줌과 말똥처럼 가치없는 말과 글)의 뉴스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 세상의 유의미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한게 기억이 납니다.
하물며 AI가 생활화된 오늘날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맞다 해도 기사의 정확도는 얼마나 되는지 판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자를 비롯한 글쓰는 이들의 책임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일상을 파고든 AI를 활용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복수의 AI를 통해 정보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차이가 있거나 찜찜함이 남는다면 두 번 이상 확인을 해야 합니다. 저 자신 그런 경험을 자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지난해 타계한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을 놓고 어느 AI는 최근 92세 생일을 맞았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관련 정보를 첨부했지만 AI는 내가 잘못 알고 있다고 우기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영문 정보까지 첨부한 끝에야 AI의 정중한(?) 사과를 받았습니다.
오늘 4월 10일은 ‘신문왕’ 조셉 퓰리처(사진)가 탄생한 날입니다. 그런데 AI가 ‘저널리즘의 아버지’, ‘정론직필의 화신’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사실 저널리즘을 공부했거나 퓰리처의 생애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마냥 칭송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오늘날 '기레기' 논란의 원조 격인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은 처절한 부수 경쟁, 판매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퓰리처가 사용한 전략들은 지금 봐도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입니다.
첫째 자극적인 헤드라인입니다. 범죄, 스캔들,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를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둘째 선동과 왜곡입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며 전쟁 여론을 부채질했습니다. 이는 현대 언론학에서 "신문이 전쟁을 만들 수 있다"는 나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셋째 옐로 키드. 당시 인기 만화인 '옐로 키드'를 두고 허스트와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는데, 여기서 오늘날의 '황색 언론'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퓰리처가 '저널리즘의 롤모델'로 추앙받는 이유는 노년에 보여준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정부의 부패를 파헤치는 탐사 보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퓰리처는 "뉴스는 단순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천명했습니다. 특히 말년에 유언을 통해 컬럼비아 대학교에 신문방송학과를 설립하고 저 유명한 퓰리처상을 제정했습니다.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치며 세상소풍을 마친 것입니다.
초기의 그는 상업주의의 노예였고, 대중지 경쟁을 촉발해 언론의 질을 떨어뜨렸지만 말년의 그는 언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표준을 정립하고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퓰리처는 "현대 저널리즘의 명암을 모두 가진 인물"로 보는 것이 가장 공정합니다. 나아가 "언론의 사명을 일깨운 저널리즘의 거인" 정도의 표현이 더 적확(的確)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결론이 AI에게 문제제기를 하자 비로소 나왔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이기(利器)란게 그렇지 않은가요. 편한 만큼 잘못 쓰면 독이 됩니다. AI가 대세일수록, 사용자가 똑똑해야 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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