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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한단고기에 대한 부질없는 위서논쟁

2025-12-22

한단고기(桓壇古記)는 위서인가 진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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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에 기록된 종교적인 내용을 배제했을 경우 약 40%는 오류이고 60%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위서(僞書)가 아닌 진서(眞書)이다.

 

김태영, <한단고기>의 오류 비판과 지리지명 고증>(제20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3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췌하여 게재한다.

 

<한단고기>가 위서(僞書)인가 진서(眞書)인가를 논증(論證)하기 위해 <한단고기>가 다루고 있는 내용 중 종교적인 면은 배제하고 역사성(歷史性) 즉, 사건이 일어난 장소, 사건의 주체인 사람, 역사적인 사건, 그리고 기록의 4가지 요소를 갖춘 내용을 살피고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거 전거(典據)를 제시하며 고증(考證)하고 고증된 지리지명들을 73개의 지도로 제시하였다. 일반적으로 역사서가 후세에 전하는 천재지변, 전쟁, 그리고 제사를 기록한 사건들도 살펴보았으나 종교적인 내용은 역사라고 볼 수 없으므로 비판하지 않았다.

 

<한단고기>를 주해한 임승국과 안경전의 주석을 조사 분석하고 <實證 한단고기>의 저자 이일봉의 지리지명에 대한 주석도 함께 검토하였으나 이들이 주석한 지리지명들은 문헌사료에 근거없는 주장, 비정, 추정, 추측, 개인 소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류를 비판하였다.

 

또한 대표적인 위서론자인 조인성을 비롯하여 박광용, 이도학, 이순근 위서론자들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고 분석한 결과

 

첫째, <한단고기>의 내용이 고대사학계의 연구성과와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조인성 자신을 비롯한 대한민국 사학계의 고대사 연구는 <한단고기>가 다루고 있는 한인(환인), 태호복희, 염제신농, 소호금천, 치우, 황제헌원, 한웅(한웅), 요(堯), 순(舜), 왕검, 흑수, 백산, 불함산 등에 감히 접근하지 못한 수준 미달의 연구성과였다는 이유이고

 

둘째, <한단고기>가 후대에 작성된 것이므로 위서라는 주장은 논리성과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역사를 재구성할 시(時)는 반드시 당대(當代)의 역사책일 필요가 없으며

 

셋째, 현대적 용어 사용 즉, 세계, 국가, 산업, 헌법, 개화, 문화, 문명, 인류, 평등 등의 용어 사용으로 볼 때 위서라는 망발(妄發)은 하나만 알고 둘부터는 모르는 무식의 소치이고

 

넷째, 이같은 위서주장을 하고 있는 명색이 사학자라는 자들은 동양사의 기본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나 유지기(劉知幾)의 <사통> 그리고 왕충(王充)의 <논형> 조차도 읽어보지 못한 무식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저서들을 읽어보았더라면 현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있어 <한단고기>가 위서라는 망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학계의 한국사 전공자들의 99.9%는 모두 소설가(小說家)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전혀 근거없는 허구의 잡설들을 재생산하고 있는 카르텔(Cartel) 집단이다.

 

그러니 동양사가 다뤄야 알 수 있는 태호복희, 소호금천, 염제신농, 치우천왕, 황제헌원, 왕검단군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역사이니 위서일 수밖에.

 

물론 <한단고기>에도 문제점은 많다.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첫째, 한자원문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해석이 잘못된 곳이 약간 있고

둘째, 주해자들이 주석을 단 당시의 지리지명의 위치는 거의 모두가 틀렸으며

셋째, 이맥의 <태백일사>가 인용하고 있는 <표훈천사(表訓天詞)>, <대변경(大辯經)>,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오제설(五帝說)>,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 그리고 <소도경전 본훈(蘇塗經典 本訓)/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은 종교책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들로 역사가 아니라는 점 등을 들 수 있으나 위서(僞書)는 아니다.

 

옥(玉)에도 티가 있다는 속담처럼 여타 글도 약간의 오류는 있기 마련이지만 제도권이 비판한 <한단고기> 위서 주장은 옳지 않다. 위서(僞書)란 ‘역사적 사실이 아닌 거짓된 내용을 기록한 글’로서 <한단고기>의 내용은 거짓이 아니다.

 

저자가 <한단고기>를 면밀하게 검토, 조사, 분석, 교차확인하고 역사가 될 수 없는 종교적인 내용을 배제했을 경우 약 40%는 허구이자 과장이고 약 60%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위서가 아닌 진서(眞書)임을 밝힌다.

 

따라서 제도권 사학자들은 부질없는 위서논쟁을 종식(終熄)하고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한단고기>의 역사성에 보다 깊은 관심과 연구논문을 통하여 <한단고기>의 가치를 더욱더 높여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댓글(이병환): 선생님 지금 환단고기 위서 논란에 논쟁이 붙었는데 이젠 삼국사기까지 위서라고 난리입니다. 저에게 하남성에 신라가 존재했었다는 삼국사기의 내용을 게재하라고 압박이 들어 왔습니다. 집에 삼국사기 영인본이 있습니다. 한 20년 전에 구입을 한 것인데 어디쯤 나오는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우선 사서(史書)의 진위(眞僞)도 구별하지 못한 수준 미달의 돌대가리들과는 말을 섞지말고 무시하는 편이 좋으며 “하남성에 신라가 존재했었다”는 게재에 앞서 한반도(韓半島)에 신라가 존재했었다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먼저 제시하라고 압박하기 바란다. 그것의 순서이다.

 

신라의 사방 6천리 강역(疆域)의 한 지역인 하남성은 신라의 활동무대로 저자의 논문 <신라의 강역 연구>(2023)에서 이미 고증(考證)한 내용이니 www.coreanhistory.com에서 검증하라 하면 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하남성에 신라가 존재했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는 마치 이씨조선왕조실록(李氏朝鮮王朝實錄) 1,893권 어디에도 ‘한반도에 조선(이씨조선)이 있어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치(理致)와 같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실존했던 BC232에서 AD935년까지 1167년 동안의 4국의 장소, 사람, 역사적 사건, 그리고 기록은 모두 대륙에서 발생하였다.

 

신라의 하남성과 관련된 지명들로:

ⓘ 고구려와 신라의 북쪽 변경인 호명(狐鳴)은 오늘날의 하남성 허창이고

⓶ 신라의 당항성(黨項城)은 하남성 지금의 항성이며

⓷ 신라의 국원소경은 지금의 하남성 암양이고

⓸ 신라의 서원소경은 지금의 하남성 영보이며

⓹ 신라 경덕왕의 묘지는 지금의 하남성 의양에 있는 모지사(毛祗寺)이며

⓺ 제36대 혜공제 5년(769) 겨울 11월에 치악현(雉岳縣)의 쥐 8천마리가 평양으로 향했다는 기사의 지악현은 지금의 하남성 치현(남소)이고

⓻ 제37대 선덕제의 조카인 김주원의 집이 있던 알천(閼川)이란 하천은 지금의 하남성 상구 남쪽이며

⑧ 신라의 헌강왕묘와 정강왕묘는 지금의 하남성 보리사(菩提寺: 석불사)에 있으며

⑨ 제13대 미추이사금의 묘지는 지금의 하남성 임영현(臨潁縣)에 있다.

 

모두 나의 논문에서 고증된 지명들이니 검증하라 하고 만약 역사학자 김태영 박사가 이들을 기록하고 있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왜곡, 날조, 조작, 축소, 변조하였거나 그러한 기미(幾微)가 있을 때는 논문(論文)으로 반박(反駁)하라 하라!

 

<한단고기>는 위서가 아닌 진서(眞書)이고 김부식의 <삼국사기> 역시 동이배달한민족의 정사(正史)이다. 오늘날의 <삼국사기>를 왜놈들이 약간 왜곡, 조작하였긴 하지만 <삼국사기>는 국보 1호급 역사서이다. 그러므로 무식(無識)한 자(者)들과 의미없는 말다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돼지(豚)가 진주(珍珠)를 알아보지 못하듯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는데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역사란 말장난이 아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사건이 일어난 장소, 사건의 주체인 사람, 역사적 사건, 그리고 기록이란 방법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들 4요소 중 장소(場所)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김태영학파(T.K.School)는 ‘역사는 장소다’라고 한다.

 

논문열람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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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내면서>

 

제도권이든 재야권이든 <한단고기(桓壇古記)>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안다. 저자 역시 2009년까지만 해도 한단고기를 위대한 우리의 역사서라고 격찬(激讚)한 바 있다. 그러나 수많은 문헌사료들을 접하고 보니 한단고기 내용의 일부가 허구적이고 과장된 부분이 있어 비판을 거치면서 잘못된 곳을 바로잡고 진실된 역사서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것이 본 학술논문의 목적이다.

 

일부 제도권에서는 한단고기를 위서(僞書)로 치부하여 한단고기의 내용을 믿는 사람들을 “환빠”라 하면서 경멸하는 경향도 있다. 환빠라고 조롱한 이들 제도권 사학자들 역시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무식빠’임에 틀림없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학자답게 논문을 통하여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 전거(典據)를 제시하며 고증하면 될터이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출처가 불분명하니, 계연수가 지었느니, 이유립이 창작과 수정을 반복하였느니 하면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지엽적인 부분만 들춰내고 있다.

 

역사책을 비판할 때는 역사성(歷史性: The nature of history)의 유무를 논해야 한다. 설사 1970년대에 이유립이 지은 책이라 하더라도 역사성이 있으면 역사책이고 역사성이 없으면 역사서가 될 수 없다. 많은 문헌사료들을 읽고 교차확인하면 진위(眞僞)는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반도사관에 갇혀있는 그들의 천박한 역사지식 때문이다. 문헌사료를 읽지 않았으니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한단고기>의 오류 비판과 지리지명 고증 논문집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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