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양심수후원회' 이끌어

‘양심수(良心囚)의 대부’ 권오헌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25일 낮 12시9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통일운동의 큰어른 권오헌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27일 오후 5시에 치러지며 발인은 28일 오전 8시30분이다.
1937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등학교를 나와 고향에서 신용협동조합 설립과 야학 등 농촌 사회운동을 펼친 이후로 평생 사회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헌신했다. 1964년 서울로 와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1968년에는 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에 가입해 당원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국장까지 지냈다. 유신 말기인 1979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간첩 조작한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3년4개월 옥고를 치렀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돼 3년 4개월을 복역하고 1983년 석방돼 남민전 관련자 석방운동과 후원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며 양심수 후원 활동에 나서 1991년 양심수후원회 회장, 민가협 공동의장을 맡아 ‘양심수의 대부’로 불렸다.
독신으로 살아 ‘평생 청년’으로도 불린 고인은 양심수를 “사회정의를 위한,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으로 규정했다.,
1989년 출범한 양심수후원회를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이끈 고인은 후원회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비전향장기수도 양심수에 포함시켜 장기수들의 북녘 송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2000년 6.15공동선언에 따른 비전향 양심수 63인의 송환 성과를 냈고 2차 송환운동에도 앞장섰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고향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2021.6.15.)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 촉구회견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10344
1991년부터 '양심수후원회' 이끌어
‘양심수(良心囚)의 대부’ 권오헌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25일 낮 12시9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통일운동의 큰어른 권오헌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27일 오후 5시에 치러지며 발인은 28일 오전 8시30분이다.
1937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등학교를 나와 고향에서 신용협동조합 설립과 야학 등 농촌 사회운동을 펼친 이후로 평생 사회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헌신했다. 1964년 서울로 와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1968년에는 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에 가입해 당원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국장까지 지냈다. 유신 말기인 1979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간첩 조작한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3년4개월 옥고를 치렀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돼 3년 4개월을 복역하고 1983년 석방돼 남민전 관련자 석방운동과 후원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며 양심수 후원 활동에 나서 1991년 양심수후원회 회장, 민가협 공동의장을 맡아 ‘양심수의 대부’로 불렸다.
독신으로 살아 ‘평생 청년’으로도 불린 고인은 양심수를 “사회정의를 위한,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으로 규정했다.,
1989년 출범한 양심수후원회를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이끈 고인은 후원회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비전향장기수도 양심수에 포함시켜 장기수들의 북녘 송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2000년 6.15공동선언에 따른 비전향 양심수 63인의 송환 성과를 냈고 2차 송환운동에도 앞장섰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고향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2021.6.15.)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 촉구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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