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유난히 침묵과 함성이 교차하는 날이 있습니다. 1940년 8월 10일, 일제는 조선어 민족지였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강제로 폐간(廢刊)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우리말로 세상을 기록할 신문마저 사라진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5년 뒤인 1945년 8월 10일, 일본은 마침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1971년 같은 날, 개발에서 밀려난 도시빈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의 삶을 지켜달라고 외쳤습니다. 신문이 침묵한 날, 일본 제국이 무너진 날,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선 날. 8월 10일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역사 속의 주요 장면>
1792년 - 프랑스혁명, 튈르리 궁전을 습격하다
프랑스혁명의 불길이 절정(絶頂)으로 치닫던 1792년 8월 10일, 파리의 시민과 혁명군은 왕궁인 튈르리 궁전을 공격했습니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궁전에서 피신했고, 왕권은 사실상 붕괴했습니다. 이후 국민공회가 소집되고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지면서 프랑스혁명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역사에서 '8월 10일 봉기'는 프랑스 군주제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한 시대의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은 궁전 안에서보다 거리의 시민들에 의해 먼저 시작되기도 합니다.
1940년 -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 폐간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폐간 명령을 내렸습니다. 두 신문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말살정책 속에서도 조선인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고, 결국 일제는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신문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할 자유와 기록할 권리, 그리고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세상에 알릴 창구가 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광복과 함께 언론은 다시 살아났고, 그날의 폐간은 오히려 언론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사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1945년 - 일본, 포츠담 선언 수락 결정
광복을 불과 닷새 앞둔 1945년 8월 10일, 일본 정부는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같은 날 소련군이 일본에 선전포고하면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결국 일본은 천황제 유지 여부에 대한 조건을 둘러싼 논의 끝에 항복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닷새 뒤인 8월 15일, 한반도에는 해방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8월 10일은 광복의 새벽이 오기 직전, 역사의 시계가 마지막으로 크게 방향을 튼 날이었습니다.
1971년 - 광주대단지 사건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도시빈민들이 모여 살던 경기도 광주대단지에서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주민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정부는 서울 도심 정비를 위해 빈민들을 외곽 지역으로 이주시켰지만, 약속했던 일자리와 생활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생존의 벼랑에 몰린 주민들은 결국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삶을 지켜달라고 외쳤습니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개발 과정에서 성장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서민들의 희생과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탄생 인물>
이봉창 (李奉昌, 1901~1932)
1901년 8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로 일본 사회를 경험했던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멸시를 통해 항일의식을 키웠습니다.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행렬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감행했습니다. 의거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 제국의 심장부에서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가 순국한 날은 10월 10일입니다. 한 청년의 30여 년 인생은 식민지 조선의 절망을 독립을 향한 결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허버트 후버 (Herbert Hoover, 1874~1964)
미국의 제31대 대통령으로, 광산공학자이자 인도주의자로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전쟁 피해자를 돕는 구호(救護) 활동을 주도했고, 이후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운 임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삶은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시대의 거대한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정치사의 교훈도 남겼습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Antonio Banderas, 1960~ )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이자 영화감독입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할리우드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섬세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스페인 영화와 할리우드를 연결한 배우로 평가받습니다.
<오늘의 타계 인물>
우장춘 (禹長春, 1898~1959)
한국 농업과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인 육종학자입니다. 1898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제국대학 농학과를 졸업하고 식물육종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배추와 양배추의 종간 교잡 연구를 통해 이른바 '우장춘의 삼각형'으로 알려진 이론을 제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950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 등을 맡아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업을 일으키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제주 감귤, 감자, 채소 종자 등의 품종 개량과 종자 자급 기반 마련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흔히 '씨 없는 수박의 개발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이를 국내에 소개하고 보급한 인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의 삶은 과학이 조국의 밥상을 바꾸고 한 나라의 미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버트 고더드 (Robert H. Goddard, 1882~1945)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로켓공학의 선구자입니다. 1926년 세계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 발사에 성공하며 현대 우주개발의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연구가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훗날 인류가 달을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고더드의 선구적인 연구가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1945년 8월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침묵은 역사를 멈추게 하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는 때로 시대의 벽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합니다."
8월 10일의 역사는 놀라울 만큼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궁전을 향해 돌진한 프랑스 시민들, 신문을 지키려 했던 식민지 조선의 언론인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봉창,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도시개발의 그늘에서 삶의 권리를 외쳤던 이름 없는 시민들. 그들의 시대와 삶은 서로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40년 조선의 신문은 강제로 문을 닫았지만, 사람들의 기억까지 폐간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1945년 일본은 항복을 결정했지만, 한반도의 미래는 다시 새로운 선택 앞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역사의 연장선(延長線) 위에 서 있습니다. 역사는 거창한 영웅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말할 수 없었던 사람이 처음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역사가 시작됩니다. 8월 10일,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도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역사의 다음 페이지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페이지에 무엇을 기록할지는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역사에는 유난히 침묵과 함성이 교차하는 날이 있습니다. 1940년 8월 10일, 일제는 조선어 민족지였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강제로 폐간(廢刊)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우리말로 세상을 기록할 신문마저 사라진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5년 뒤인 1945년 8월 10일, 일본은 마침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1971년 같은 날, 개발에서 밀려난 도시빈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의 삶을 지켜달라고 외쳤습니다. 신문이 침묵한 날, 일본 제국이 무너진 날,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선 날. 8월 10일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역사 속의 주요 장면>
1792년 - 프랑스혁명, 튈르리 궁전을 습격하다
프랑스혁명의 불길이 절정(絶頂)으로 치닫던 1792년 8월 10일, 파리의 시민과 혁명군은 왕궁인 튈르리 궁전을 공격했습니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궁전에서 피신했고, 왕권은 사실상 붕괴했습니다. 이후 국민공회가 소집되고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지면서 프랑스혁명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역사에서 '8월 10일 봉기'는 프랑스 군주제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한 시대의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은 궁전 안에서보다 거리의 시민들에 의해 먼저 시작되기도 합니다.
1940년 -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 폐간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폐간 명령을 내렸습니다. 두 신문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말살정책 속에서도 조선인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고, 결국 일제는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신문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할 자유와 기록할 권리, 그리고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세상에 알릴 창구가 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광복과 함께 언론은 다시 살아났고, 그날의 폐간은 오히려 언론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사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1945년 - 일본, 포츠담 선언 수락 결정
광복을 불과 닷새 앞둔 1945년 8월 10일, 일본 정부는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같은 날 소련군이 일본에 선전포고하면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결국 일본은 천황제 유지 여부에 대한 조건을 둘러싼 논의 끝에 항복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닷새 뒤인 8월 15일, 한반도에는 해방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8월 10일은 광복의 새벽이 오기 직전, 역사의 시계가 마지막으로 크게 방향을 튼 날이었습니다.
1971년 - 광주대단지 사건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도시빈민들이 모여 살던 경기도 광주대단지에서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주민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정부는 서울 도심 정비를 위해 빈민들을 외곽 지역으로 이주시켰지만, 약속했던 일자리와 생활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생존의 벼랑에 몰린 주민들은 결국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삶을 지켜달라고 외쳤습니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개발 과정에서 성장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서민들의 희생과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탄생 인물>
이봉창 (李奉昌, 1901~1932)
1901년 8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로 일본 사회를 경험했던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멸시를 통해 항일의식을 키웠습니다.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행렬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감행했습니다. 의거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 제국의 심장부에서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가 순국한 날은 10월 10일입니다. 한 청년의 30여 년 인생은 식민지 조선의 절망을 독립을 향한 결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허버트 후버 (Herbert Hoover, 1874~1964)
미국의 제31대 대통령으로, 광산공학자이자 인도주의자로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전쟁 피해자를 돕는 구호(救護) 활동을 주도했고, 이후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운 임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삶은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시대의 거대한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정치사의 교훈도 남겼습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Antonio Banderas, 1960~ )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이자 영화감독입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할리우드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섬세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스페인 영화와 할리우드를 연결한 배우로 평가받습니다.
<오늘의 타계 인물>
우장춘 (禹長春, 1898~1959)
한국 농업과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인 육종학자입니다. 1898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제국대학 농학과를 졸업하고 식물육종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배추와 양배추의 종간 교잡 연구를 통해 이른바 '우장춘의 삼각형'으로 알려진 이론을 제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950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 등을 맡아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업을 일으키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제주 감귤, 감자, 채소 종자 등의 품종 개량과 종자 자급 기반 마련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흔히 '씨 없는 수박의 개발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이를 국내에 소개하고 보급한 인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의 삶은 과학이 조국의 밥상을 바꾸고 한 나라의 미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버트 고더드 (Robert H. Goddard, 1882~1945)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로켓공학의 선구자입니다. 1926년 세계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 발사에 성공하며 현대 우주개발의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연구가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훗날 인류가 달을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고더드의 선구적인 연구가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1945년 8월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침묵은 역사를 멈추게 하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는 때로 시대의 벽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합니다."
8월 10일의 역사는 놀라울 만큼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궁전을 향해 돌진한 프랑스 시민들, 신문을 지키려 했던 식민지 조선의 언론인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봉창,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도시개발의 그늘에서 삶의 권리를 외쳤던 이름 없는 시민들. 그들의 시대와 삶은 서로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40년 조선의 신문은 강제로 문을 닫았지만, 사람들의 기억까지 폐간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1945년 일본은 항복을 결정했지만, 한반도의 미래는 다시 새로운 선택 앞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역사의 연장선(延長線) 위에 서 있습니다. 역사는 거창한 영웅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말할 수 없었던 사람이 처음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역사가 시작됩니다. 8월 10일,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도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역사의 다음 페이지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페이지에 무엇을 기록할지는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