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김일성 회동, 클린턴 방북 주선

세계적인 통일평화학자로 반평생 조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박한식 美조지아대(UGA) 명예교수가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박한식 교수는 1939년 중국 하얼빈에서 3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중국에서 평양으로 건너온 가족들은 1948년 38선을 넘어 조부(祖父)의 고향인 경상도로 내려가 대구에 터를 잡았고 박한식교수도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성원 여사와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정치학석사를,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0년부터 2015년까지 조지아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수많은 후학(後學)을 양성했다.
1981년 북한으로부터 학자로 초청받아 평양 등을 50여 차례 방문하고 직접 교류·연구하여 ABC, CNN, BBC, Aljazeera를 비롯한 전 세계 유력 언론들로부터 인터뷰·출연·기고 등을 요청받으며 북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북·미 관계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였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위기가 감돌던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성사시켰고 2009년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해 당시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 기자들의 석방을 이끌어내 북-미 관계 변화의 기회를 마련했다.
북한 기아 완화를 위해 북·미 농업대표단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추진했으며, 조지아대학교에 국제 문제연구소(글로비스)를 설립하여 학생들의 국제 평화에 대한 안목을 증진시켰다. 2003년엔 북·미 간, 2011년엔 남·북·미 간 트랙II 회담을 추진해 ‘북·미 평화의 설계자’로 불렸다.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이라 평가받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각종 미디어와 저술 활동으로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방안을 꾸준히 역설하고 있다. 영문 저서로 North Korea: The Politics of Unconventional Wisdom (2002), Human Needs and Political Development (1984), Globalization: Blessing or Curse? (2018, 2022 증보판), 한글 저서로 <선을 넘어 생각한다>(2018), <평화에 미치다>(2021), <안보에서 평화로>(2022) 등이 있다.
1980년부터 중국 헤이룽장성을 매년 방문해 직접 녹화한 이산 가족들의 사연을 방송에 내보냈다.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이라 일컬어지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으면서 박교수는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온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2015년엔 테드(TED) 콘퍼런스에 초청돼 평화의 개념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2015년 조지아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고인은 남북갈등·남남갈등·북미갈등의 해법을 탐색하면서 진정한 평화와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여는 데 여생(餘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연과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5년간 한달에 한번 zoom을 통해 ‘박한식 사랑방’ 강좌를 마련, 전 세계 온라인 청중을 연결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피스메이커는 적과의 대화 만드는 사람” (2025.10.23.)
‘피스메이커’ 박한식교수 마지막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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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김일성 회동, 클린턴 방북 주선
세계적인 통일평화학자로 반평생 조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박한식 美조지아대(UGA) 명예교수가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박한식 교수는 1939년 중국 하얼빈에서 3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중국에서 평양으로 건너온 가족들은 1948년 38선을 넘어 조부(祖父)의 고향인 경상도로 내려가 대구에 터를 잡았고 박한식교수도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성원 여사와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정치학석사를,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0년부터 2015년까지 조지아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수많은 후학(後學)을 양성했다.
1981년 북한으로부터 학자로 초청받아 평양 등을 50여 차례 방문하고 직접 교류·연구하여 ABC, CNN, BBC, Aljazeera를 비롯한 전 세계 유력 언론들로부터 인터뷰·출연·기고 등을 요청받으며 북한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북·미 관계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였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위기가 감돌던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성사시켰고 2009년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해 당시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 기자들의 석방을 이끌어내 북-미 관계 변화의 기회를 마련했다.
북한 기아 완화를 위해 북·미 농업대표단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추진했으며, 조지아대학교에 국제 문제연구소(글로비스)를 설립하여 학생들의 국제 평화에 대한 안목을 증진시켰다. 2003년엔 북·미 간, 2011년엔 남·북·미 간 트랙II 회담을 추진해 ‘북·미 평화의 설계자’로 불렸다.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이라 평가받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각종 미디어와 저술 활동으로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방안을 꾸준히 역설하고 있다. 영문 저서로 North Korea: The Politics of Unconventional Wisdom (2002), Human Needs and Political Development (1984), Globalization: Blessing or Curse? (2018, 2022 증보판), 한글 저서로 <선을 넘어 생각한다>(2018), <평화에 미치다>(2021), <안보에서 평화로>(2022) 등이 있다.
1980년부터 중국 헤이룽장성을 매년 방문해 직접 녹화한 이산 가족들의 사연을 방송에 내보냈다.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이라 일컬어지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으면서 박교수는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온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2015년엔 테드(TED) 콘퍼런스에 초청돼 평화의 개념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2015년 조지아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고인은 남북갈등·남남갈등·북미갈등의 해법을 탐색하면서 진정한 평화와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여는 데 여생(餘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연과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5년간 한달에 한번 zoom을 통해 ‘박한식 사랑방’ 강좌를 마련, 전 세계 온라인 청중을 연결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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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피스메이커는 적과의 대화 만드는 사람” (2025.10.23.)
‘피스메이커’ 박한식교수 마지막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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