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의 상황이 종결(終結) 내지는 잠정 매듭으로 향하는 현재 시점의 국제 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정치인 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일 듯 싶다. 한편 한국에서는 언론과 지식인들에 의해 지나치게 왜곡되고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나의 관점에서 푸틴이라는 존재는 러시아의 역사문화와 지정학적 상황이 융합되어 나타난 현존이고 개인적인 가족사가 배경으로 독특한 개성을 형성한 흥미로운 대상이다.
그의 개인사를 잠깐 언급하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히틀러의 나치가 레닌그나드를 900 여일 포위한 가운데 두 형이 아사(餓死)하고 어머니는 상해를 당해 식량보급을 받은 아버지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외가의 남자들은 전쟁통에 모두 사망했고 본인도 소련붕괴 이후 어려운 생계를 위해 잠시 동베를린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푸틴이 서방 특히 나치집단에 대하여 지닌 분노와 두려움이 각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푸틴이 러시아의 지도자로 부상한 배경을 살펴보자면, 소연방 붕괴이후 미국과 서방이 과거 공산당 지도급 인사들(후에는 올리가리히 Oligarch가 된 집단)과 결속하여 하이에나처럼 러시아 사회를 약탈하고 붕괴시키는 악몽같은 시점에서 혜성(彗星)같이 나타나 러시아의 미래 좌표로 두가지, 피터대제의 꿈인 <슬라브 민족주의>와 정신적 기둥으로 <러시아 정교의 부활>을 제시하면서 당시 대통령 옐친에 의해 한순간에 수상으로 발탁되었고, 그의 사후 현재까지 러시아 인민의 절대적 지지 하에 확고부동한 지도자의 입지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런 맥락과 전제에서 러시아 정교의 지도자가 분석한 푸틴의 기본철학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또한 그의 사상이 GGI 등 지구촌 구상을 제시한 중국의 시진핑과 형제처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푸틴의 기본 철학.
(복잡계 이론에 근거한 다중심성의 상호 융합)
VDC. 2025년 11월 05일
기고: 알렉산더 쉬프코프, 정치 철학자이자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 성 요한 대학교 총장
국제 관계에 대한 전략적 비전은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모든 세계 국가들은 '추그츠방(zugzwang)라는 위기국면' 상태에 갇혀 전술적인 기다림을 선호합니다. 누가 먼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자원을 고갈시킬까요?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은 복잡성의 철학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BRICS 국가들이 체계적인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롭고 공의회적인 세계 질서의 윤곽을 그릴 준비가 되어 있다.
2025년 10월, 발다이토론 클럽 연례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청중들에게 가까운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세계화 이후 시대의 새로운 국제 관계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설을 분석할 때, 발다이클럽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적 발언을 하는 장소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다극성의 원칙에 기반했습니다. 더욱이, 복잡성의 철학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다중심성" 혹은 “다극성" (polycentrism, or multipolarity)이라는 익숙한 개념을 발전시키고 확장하여 이전의 구조적 수준에서 새로운 방법론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을 의미합니다.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에서 개별의 개념들은 고유한 장점과 경쟁적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고유한 조합과 구성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논리 법칙, 인과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패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복잡성의 철학, 즉 양자역학과 유사한 것으로, 고전 물리학보다 현명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복잡합니다." 본질적으로 복잡성 철학은 과학적 방법론에서 비선형적 연결을 가진 결합된 시스템, 즉 흔히 "복잡한 패러다임"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연구하는데 사용되는 중요한 접근법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창발성, 즉 전체의 법칙은 안에 갇혀 있는 시스템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복잡계의 자기조직화, 즉 시너지 이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과거 세계화 시대에 발전된 기존의 이론들은 이를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푸틴에 따르면, 복잡성 철학의 원칙은 평등과 구성 주체 간의 공정한 이해관계 정렬, 문화적 고유성 보존, 그리고 다중 벡터 역사를 포용하는 새로운 세계 공동체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후자의 접근 방식은 역사를 "자연스러운" 진화나 기업지배구조가 아닌, 일련의 다방향적 과정과 공정한 이해관계 정렬로 보는 것을 수반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계 지배계급 형태의 세계 "이사회(집단서방)"의 지시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다극성"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중심성"이 "다극성"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개념의 의미적 차이점은 "다극성"과 달리 "다중심성"은 단순히 구성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자체 법칙에 따라 창발되는 새로운 구성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복잡성 철학의 일부 교리와 유사한 개념이 러시아 정교회 신학에서 원래 발견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신조(신앙)와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 외에는 자족적인 이론적 진리가 없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공동의 행동, 협력, 즉 공의회적 방식을 통해 발생하고 발전합니다. 본질적으로 푸틴은 전통 종교의 특징인 바로 이러한 방법론의 사용을 촉구합니다.
이 방법론의 폭넓은 적용 가능성은 이해할 만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각 민족의 전통 종교는 그들의 문화 생활의 형태와 사회 제도의 본질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세계의 사회문화적 맥락은 어떤 면에서든 진정한 러시아 정교회 신앙의 투영입니다. 이 경우, 우리 전통 전체의 특징인 "정의로운 세계 질서"라는 전통적 관념(topos)는 새로운 문화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보존되고 재생산됩니다. 물론 오늘날 이는 반세기 전보다 훨씬 실용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자선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토대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미래 세계 비전의 토대는 바로 공정한 협력이라는 개념입니다.
또한 공조(협업)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기업처럼 구조화될 수 없으며, 평등한 구성원들의 연합과 그들의 이익의 공정한 균형을 통해서만 입장과 세계관의 공약 불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다중중심적 또는 다극적 세계의 복잡성 철학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와 국민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붕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잡성의 철학"과 "다중중심주의"라는 두 개념은 모두 가까운 미래에 서구가 만들어낸 역사적 질병인 세계화를 체계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리더십"이라는 가면을 쓴 서구 패권주의의 세계화는 이미 지쳐버렸습니다. 새로운 정치 모델에서 세계 행위자들은 더 이상 역사적 과정의 주체와 객체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진보적 운명론과 세계적 "리더십"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호 존중과 협력을 포용하도록 요구 받습니다.
푸틴이 강조했듯이, 20 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서구국가들은 절대권력의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글로벌 거버넌스 제도는 기능을 멈추거나 그 효과를 크게 상실했습니다." 이제 패권은 "다자적이고 협력적인 접근 방식으로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역사수업에서 베스트팔렌 체제를 기억합니다. 30년 전쟁 이후, 17세기 세계는 국가 주권의 원칙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급진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교황청은 더 이상 유럽 전체에 획일적인 규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세계 정치는 이제 유럽 열강들의 "협의체"로 구조화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에서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그리고 초국적 과두정권이 과거의 가톨릭 로마의 역할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규칙기반 세계"에서 규칙은 워싱턴과 런던에서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규칙"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목격합니다. 경제적 약탈과 사회문화적 비인격화라는 신식민주의 체제는 심각하게 실패했으며, 이들 서구의 엘리트들은 더 이상 관리된 갈등을 통해 세계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푸틴은 사실상 새로운 "베스트팔렌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현대 세계는 다시 한번 주권적 실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를 엘리트가 아닌 민족의 역사로 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수많은 공동체로 봅니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공통의 가치기반을 공유한다면 생산적이
고 비폭력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통 종교들이 세속주의적 세계주의의 영향에 대한 면역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이는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보편적" 통합이라는 자유주의-세속주의적 원칙은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코민테른이나 국제적" 금융구조와 유사한 새로운 세계주의적 프로젝트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국 모든 자유주의-세속주의적 보편주의는 인류의 대적(악마성)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유혹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악마는 그리스도를 보편성, 즉 세상에 대한 완전하고 유일한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유혹합니다. 물론, 그것은 악마의 중재를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거부합니다. "마귀가 다시 예수를 데리고 매우 높은 산으로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예수께 수종을 들다(마태복음 4:8-11).
세계화와 새로운 바벨론 건설 사이의 유비는 신학자 요한 계시록의 맥락을 포함하여 매우 명백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요한 계시록에는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되, 이리 오라, 많은 물가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녀와 간음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녀의 간음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더라." (요한 계시록 17:1-2)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중심이 아닌 여러 지역으로 다시금 분화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화에 대한 성향을 지닌 과거의 가톨릭 교회는 이제 "주변부 신학"이라는 개념을 외교 전략에 접합시키고 있습니다. 바티칸은 세계 "주변부"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세계의 점진적인 ‘탈중앙화’라는 배경 속에서 남반구(Global South)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종교적 선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서구화를 위한 "소프트 파워"로 기능하며 궁극적으로 유럽-대서양주의 전략을 촉진합니다. 따라서 서방은 남반구의 정치적 자원을 장악하여 유럽을 중심으로 러시아와의 계획된 충돌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전략적 비전은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모든 국제 행위자들은 '추그츠방(zugzwang), 즉 위기국면' 상태에 갇혀 전술적인 기다림을 선호합니다. 누가 먼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자원을 고갈시킬까요? 한편, 푸틴 대통령은 복잡성의 철학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BRICS 국가들은 체계적으로 중요한 행위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롭고 공의회적인 세계질서의 윤곽을 그릴 준비가 이미 되어 있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이래경의 격동세계’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rk100
우크라의 상황이 종결(終結) 내지는 잠정 매듭으로 향하는 현재 시점의 국제 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정치인 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일 듯 싶다. 한편 한국에서는 언론과 지식인들에 의해 지나치게 왜곡되고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나의 관점에서 푸틴이라는 존재는 러시아의 역사문화와 지정학적 상황이 융합되어 나타난 현존이고 개인적인 가족사가 배경으로 독특한 개성을 형성한 흥미로운 대상이다.
그의 개인사를 잠깐 언급하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히틀러의 나치가 레닌그나드를 900 여일 포위한 가운데 두 형이 아사(餓死)하고 어머니는 상해를 당해 식량보급을 받은 아버지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외가의 남자들은 전쟁통에 모두 사망했고 본인도 소련붕괴 이후 어려운 생계를 위해 잠시 동베를린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푸틴이 서방 특히 나치집단에 대하여 지닌 분노와 두려움이 각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푸틴이 러시아의 지도자로 부상한 배경을 살펴보자면, 소연방 붕괴이후 미국과 서방이 과거 공산당 지도급 인사들(후에는 올리가리히 Oligarch가 된 집단)과 결속하여 하이에나처럼 러시아 사회를 약탈하고 붕괴시키는 악몽같은 시점에서 혜성(彗星)같이 나타나 러시아의 미래 좌표로 두가지, 피터대제의 꿈인 <슬라브 민족주의>와 정신적 기둥으로 <러시아 정교의 부활>을 제시하면서 당시 대통령 옐친에 의해 한순간에 수상으로 발탁되었고, 그의 사후 현재까지 러시아 인민의 절대적 지지 하에 확고부동한 지도자의 입지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런 맥락과 전제에서 러시아 정교의 지도자가 분석한 푸틴의 기본철학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또한 그의 사상이 GGI 등 지구촌 구상을 제시한 중국의 시진핑과 형제처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푸틴의 기본 철학.
(복잡계 이론에 근거한 다중심성의 상호 융합)
VDC. 2025년 11월 05일
기고: 알렉산더 쉬프코프, 정치 철학자이자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 성 요한 대학교 총장
국제 관계에 대한 전략적 비전은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모든 세계 국가들은 '추그츠방(zugzwang)라는 위기국면' 상태에 갇혀 전술적인 기다림을 선호합니다. 누가 먼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자원을 고갈시킬까요?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은 복잡성의 철학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BRICS 국가들이 체계적인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롭고 공의회적인 세계 질서의 윤곽을 그릴 준비가 되어 있다.
2025년 10월, 발다이토론 클럽 연례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청중들에게 가까운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세계화 이후 시대의 새로운 국제 관계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설을 분석할 때, 발다이클럽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적 발언을 하는 장소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다극성의 원칙에 기반했습니다. 더욱이, 복잡성의 철학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다중심성" 혹은 “다극성" (polycentrism, or multipolarity)이라는 익숙한 개념을 발전시키고 확장하여 이전의 구조적 수준에서 새로운 방법론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을 의미합니다.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에서 개별의 개념들은 고유한 장점과 경쟁적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고유한 조합과 구성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논리 법칙, 인과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패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복잡성의 철학, 즉 양자역학과 유사한 것으로, 고전 물리학보다 현명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복잡합니다." 본질적으로 복잡성 철학은 과학적 방법론에서 비선형적 연결을 가진 결합된 시스템, 즉 흔히 "복잡한 패러다임"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연구하는데 사용되는 중요한 접근법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창발성, 즉 전체의 법칙은 안에 갇혀 있는 시스템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복잡계의 자기조직화, 즉 시너지 이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과거 세계화 시대에 발전된 기존의 이론들은 이를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푸틴에 따르면, 복잡성 철학의 원칙은 평등과 구성 주체 간의 공정한 이해관계 정렬, 문화적 고유성 보존, 그리고 다중 벡터 역사를 포용하는 새로운 세계 공동체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후자의 접근 방식은 역사를 "자연스러운" 진화나 기업지배구조가 아닌, 일련의 다방향적 과정과 공정한 이해관계 정렬로 보는 것을 수반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계 지배계급 형태의 세계 "이사회(집단서방)"의 지시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다극성"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중심성"이 "다극성"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개념의 의미적 차이점은 "다극성"과 달리 "다중심성"은 단순히 구성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자체 법칙에 따라 창발되는 새로운 구성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복잡성 철학의 일부 교리와 유사한 개념이 러시아 정교회 신학에서 원래 발견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신조(신앙)와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 외에는 자족적인 이론적 진리가 없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공동의 행동, 협력, 즉 공의회적 방식을 통해 발생하고 발전합니다. 본질적으로 푸틴은 전통 종교의 특징인 바로 이러한 방법론의 사용을 촉구합니다.
이 방법론의 폭넓은 적용 가능성은 이해할 만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각 민족의 전통 종교는 그들의 문화 생활의 형태와 사회 제도의 본질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세계의 사회문화적 맥락은 어떤 면에서든 진정한 러시아 정교회 신앙의 투영입니다. 이 경우, 우리 전통 전체의 특징인 "정의로운 세계 질서"라는 전통적 관념(topos)는 새로운 문화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보존되고 재생산됩니다. 물론 오늘날 이는 반세기 전보다 훨씬 실용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자선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토대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미래 세계 비전의 토대는 바로 공정한 협력이라는 개념입니다.
또한 공조(협업)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기업처럼 구조화될 수 없으며, 평등한 구성원들의 연합과 그들의 이익의 공정한 균형을 통해서만 입장과 세계관의 공약 불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다중중심적 또는 다극적 세계의 복잡성 철학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와 국민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붕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잡성의 철학"과 "다중중심주의"라는 두 개념은 모두 가까운 미래에 서구가 만들어낸 역사적 질병인 세계화를 체계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리더십"이라는 가면을 쓴 서구 패권주의의 세계화는 이미 지쳐버렸습니다. 새로운 정치 모델에서 세계 행위자들은 더 이상 역사적 과정의 주체와 객체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진보적 운명론과 세계적 "리더십"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호 존중과 협력을 포용하도록 요구 받습니다.
푸틴이 강조했듯이, 20 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서구국가들은 절대권력의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글로벌 거버넌스 제도는 기능을 멈추거나 그 효과를 크게 상실했습니다." 이제 패권은 "다자적이고 협력적인 접근 방식으로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역사수업에서 베스트팔렌 체제를 기억합니다. 30년 전쟁 이후, 17세기 세계는 국가 주권의 원칙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급진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교황청은 더 이상 유럽 전체에 획일적인 규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세계 정치는 이제 유럽 열강들의 "협의체"로 구조화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에서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그리고 초국적 과두정권이 과거의 가톨릭 로마의 역할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규칙기반 세계"에서 규칙은 워싱턴과 런던에서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규칙"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목격합니다. 경제적 약탈과 사회문화적 비인격화라는 신식민주의 체제는 심각하게 실패했으며, 이들 서구의 엘리트들은 더 이상 관리된 갈등을 통해 세계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푸틴은 사실상 새로운 "베스트팔렌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현대 세계는 다시 한번 주권적 실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를 엘리트가 아닌 민족의 역사로 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수많은 공동체로 봅니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공통의 가치기반을 공유한다면 생산적이
고 비폭력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통 종교들이 세속주의적 세계주의의 영향에 대한 면역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이는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보편적" 통합이라는 자유주의-세속주의적 원칙은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코민테른이나 국제적" 금융구조와 유사한 새로운 세계주의적 프로젝트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국 모든 자유주의-세속주의적 보편주의는 인류의 대적(악마성)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유혹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악마는 그리스도를 보편성, 즉 세상에 대한 완전하고 유일한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유혹합니다. 물론, 그것은 악마의 중재를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거부합니다. "마귀가 다시 예수를 데리고 매우 높은 산으로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예수께 수종을 들다(마태복음 4:8-11).
세계화와 새로운 바벨론 건설 사이의 유비는 신학자 요한 계시록의 맥락을 포함하여 매우 명백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요한 계시록에는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되, 이리 오라, 많은 물가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녀와 간음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녀의 간음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더라." (요한 계시록 17:1-2)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중심이 아닌 여러 지역으로 다시금 분화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화에 대한 성향을 지닌 과거의 가톨릭 교회는 이제 "주변부 신학"이라는 개념을 외교 전략에 접합시키고 있습니다. 바티칸은 세계 "주변부"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세계의 점진적인 ‘탈중앙화’라는 배경 속에서 남반구(Global South)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종교적 선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서구화를 위한 "소프트 파워"로 기능하며 궁극적으로 유럽-대서양주의 전략을 촉진합니다. 따라서 서방은 남반구의 정치적 자원을 장악하여 유럽을 중심으로 러시아와의 계획된 충돌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전략적 비전은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모든 국제 행위자들은 '추그츠방(zugzwang), 즉 위기국면' 상태에 갇혀 전술적인 기다림을 선호합니다. 누가 먼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자원을 고갈시킬까요? 한편, 푸틴 대통령은 복잡성의 철학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BRICS 국가들은 체계적으로 중요한 행위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롭고 공의회적인 세계질서의 윤곽을 그릴 준비가 이미 되어 있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이래경의 격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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