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심리학도 연구해야“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련 발언과 행동에는 이전과는 다른 몇 가지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러한 훈련이 북한에 “적대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해 안에 다시 만날 의향도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을 곧바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나 북핵 인정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을 이전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다시 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미 간 비공개 접촉이 실제 진행되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화 재개의 가능성이 과거보다 커지고 있다는 신호는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대한 관심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보여 왔다. 또한 장기화 되고 있는 이란 문제로 상당한 정치·외교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또 하나의 외교적 성과로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排除) 할 수 없다.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 연락사무소 설치, 외교관계 정상화 등 지금까지 여러 차례 논의되다 중단된 의제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수동적으로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북미 간 대화의 공간이 열릴 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함께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는 좋은 역사적 사례다. 당시 미국과 북한의 대립은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직접 대화하면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고,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과 제네바 기본합의로 이어졌다.
이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역시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정보와 설득, 중재와 직접 접촉, 그리고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대북 인식과 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얼마 전 컬럼비아대 한국학생회가 민주평통과 함께 개최한 세미나에서 미국 대학의 한반도 및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유익한 논의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대담하고 현실적인 새로운 대안(代案)이 제시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결국 한반도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가 보다 창의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전문가들이 해답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고 미국 사회와 정치권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핵을 현실에서 다시 생각하자
북핵문제에서도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가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장기적인 목표라는 점과, 북한이 이미 상당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현실에 존재하는 핵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전제하고 정책을 세우는 것과, 그 현실을 인정하면서 장기적으로 어떻게 위험을 줄여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는 ‘즉각적인 완전 비핵화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는 접근만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핵 동결, 핵물질 생산 제한, 군비통제, 미사일 제한, 상호 연락체계 구축, 평화체제 논의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최종적인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함께 모색하는 현실적인 접근도 논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반도의 장기적 미래라는 관점에서도 북핵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장차 남북이 화해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한반도가 등장한다면 동북아의 전략적 지형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 북한이 보유한 핵 능력이 장래에 어떤 형태로 처리되어야 하는지도 금기(禁忌) 없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통일한국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일 수 있지만, 동시에 핵능력이 존재하는 과도기나 여러 다른 전략적 시나리오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통일된 한반도가 특정 강대국의 세력권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적인 국가로 존재한다면, 한반도의 강력한 자체 방위능력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강대국의 군사적 압박을 억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미국의 장기적인 동북아 전략과 어떤 접점을 가질 수 있는지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한의 핵을 그대로 인정하자’거나 ‘통일한국이 반드시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금기처럼 취급해 온 여러 전략적 가능성을 열어 놓고, 북한의 핵 능력을 단순히 현재의 위협이라는 한 가지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협력 없이 한반도의 평화체제나 통일을 추진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없이 통일을 논의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설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국이 국제정치와 외교에서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거나 일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자신의 국익과 한반도의 장기적 미래를 기준으로 보다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를 펼칠 때 북한 역시 한국을 미국의 대리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협상 상대이자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인 당사자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미동맹과 외교적 자율성을 양자택일(兩者擇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고, 미국의 국가이익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목표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우리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심리학’을 연구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인과 외교관, 국제정치학자들의 영역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점이다. 이제는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남북관계의 심리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거치면서 남과 북의 주민들에게 어떤 공포와 상처, 분노와 적대감이 형성됐는가. 그러한 집단적 트라우마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다시 그다음 세대로 어떻게 전달되었는가. 국가가 만들어 온 선전과 교육은 상대방에 대한 ‘적(敵)의 이미지’를 어떻게 강화해 왔는가. 그리고 70년이 넘는 분단 속에서 만들어진 불신을 우리는 어떻게 줄여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만들기 어렵다.
북한의 대남 발언과 행동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극단적인 언어와 적대적 행동을 단순히 비이성적 행동으로만 규정하기보다, 그 배경에 어떤 두려움과 불안, 체제적 기억과 기대가 존재하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의 행동을 심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와 협상하기는 어렵다.
남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는 한국전쟁과 분단, 북한의 군사도발에서 비롯된 깊은 불신과 공포가 존재한다. 북한 주민들 역시 전쟁과 폭격, 제재와 군사적 대립에 대한 자신들만의 집단적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70년이 넘는 분단은 단순한 국토의 분단이나 정치체제의 분단이 아니다. 기억의 분단이며, 감정의 분단이고, 두려움과 불신의 분단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분단까지 극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망자로 남아 있는 것도 아쉽다. 역사적 변화는 정부와 정치인만 만들어 내지 않는다. 시민사회와 지식인, 언론인, 해외동포들이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고 서로 다른 사회를 연결할 때 정책도 움직일 수 있다.
몇 달 전 워싱턴 D.C.에서 열린 KAPAC 행사에서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촉구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공동선언이 나왔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통일은 어느 날 정치지도자들이 합의서에 서명한다고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다.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상대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길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이제는 핵과 군사력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연구해야 한다.
북핵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사고와 함께 ‘남북관계의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때다.

김형구 AOK 뉴저지 공동대표/ Adjunct Associate Professor at Augusta University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reporter&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F%AD%B8%B0+%B1%E2%C0%DA&sop=and
“남북관계 심리학도 연구해야“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련 발언과 행동에는 이전과는 다른 몇 가지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러한 훈련이 북한에 “적대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해 안에 다시 만날 의향도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을 곧바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나 북핵 인정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을 이전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다시 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미 간 비공개 접촉이 실제 진행되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화 재개의 가능성이 과거보다 커지고 있다는 신호는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대한 관심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보여 왔다. 또한 장기화 되고 있는 이란 문제로 상당한 정치·외교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또 하나의 외교적 성과로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排除) 할 수 없다.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 연락사무소 설치, 외교관계 정상화 등 지금까지 여러 차례 논의되다 중단된 의제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수동적으로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북미 간 대화의 공간이 열릴 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함께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는 좋은 역사적 사례다. 당시 미국과 북한의 대립은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직접 대화하면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고,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과 제네바 기본합의로 이어졌다.
이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역시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정보와 설득, 중재와 직접 접촉, 그리고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대북 인식과 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얼마 전 컬럼비아대 한국학생회가 민주평통과 함께 개최한 세미나에서 미국 대학의 한반도 및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유익한 논의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대담하고 현실적인 새로운 대안(代案)이 제시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결국 한반도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가 보다 창의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전문가들이 해답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고 미국 사회와 정치권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핵을 현실에서 다시 생각하자
북핵문제에서도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가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장기적인 목표라는 점과, 북한이 이미 상당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현실에 존재하는 핵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전제하고 정책을 세우는 것과, 그 현실을 인정하면서 장기적으로 어떻게 위험을 줄여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는 ‘즉각적인 완전 비핵화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는 접근만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핵 동결, 핵물질 생산 제한, 군비통제, 미사일 제한, 상호 연락체계 구축, 평화체제 논의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최종적인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함께 모색하는 현실적인 접근도 논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반도의 장기적 미래라는 관점에서도 북핵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장차 남북이 화해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한반도가 등장한다면 동북아의 전략적 지형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 북한이 보유한 핵 능력이 장래에 어떤 형태로 처리되어야 하는지도 금기(禁忌) 없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통일한국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일 수 있지만, 동시에 핵능력이 존재하는 과도기나 여러 다른 전략적 시나리오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통일된 한반도가 특정 강대국의 세력권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적인 국가로 존재한다면, 한반도의 강력한 자체 방위능력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강대국의 군사적 압박을 억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미국의 장기적인 동북아 전략과 어떤 접점을 가질 수 있는지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한의 핵을 그대로 인정하자’거나 ‘통일한국이 반드시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금기처럼 취급해 온 여러 전략적 가능성을 열어 놓고, 북한의 핵 능력을 단순히 현재의 위협이라는 한 가지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협력 없이 한반도의 평화체제나 통일을 추진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없이 통일을 논의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설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국이 국제정치와 외교에서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거나 일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자신의 국익과 한반도의 장기적 미래를 기준으로 보다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를 펼칠 때 북한 역시 한국을 미국의 대리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협상 상대이자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인 당사자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미동맹과 외교적 자율성을 양자택일(兩者擇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고, 미국의 국가이익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목표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우리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심리학’을 연구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인과 외교관, 국제정치학자들의 영역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점이다. 이제는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남북관계의 심리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거치면서 남과 북의 주민들에게 어떤 공포와 상처, 분노와 적대감이 형성됐는가. 그러한 집단적 트라우마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다시 그다음 세대로 어떻게 전달되었는가. 국가가 만들어 온 선전과 교육은 상대방에 대한 ‘적(敵)의 이미지’를 어떻게 강화해 왔는가. 그리고 70년이 넘는 분단 속에서 만들어진 불신을 우리는 어떻게 줄여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만들기 어렵다.
북한의 대남 발언과 행동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극단적인 언어와 적대적 행동을 단순히 비이성적 행동으로만 규정하기보다, 그 배경에 어떤 두려움과 불안, 체제적 기억과 기대가 존재하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의 행동을 심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와 협상하기는 어렵다.
남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는 한국전쟁과 분단, 북한의 군사도발에서 비롯된 깊은 불신과 공포가 존재한다. 북한 주민들 역시 전쟁과 폭격, 제재와 군사적 대립에 대한 자신들만의 집단적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70년이 넘는 분단은 단순한 국토의 분단이나 정치체제의 분단이 아니다. 기억의 분단이며, 감정의 분단이고, 두려움과 불신의 분단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분단까지 극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망자로 남아 있는 것도 아쉽다. 역사적 변화는 정부와 정치인만 만들어 내지 않는다. 시민사회와 지식인, 언론인, 해외동포들이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고 서로 다른 사회를 연결할 때 정책도 움직일 수 있다.
몇 달 전 워싱턴 D.C.에서 열린 KAPAC 행사에서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촉구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공동선언이 나왔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통일은 어느 날 정치지도자들이 합의서에 서명한다고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다.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상대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길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이제는 핵과 군사력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연구해야 한다.
북핵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사고와 함께 ‘남북관계의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때다.
김형구 AOK 뉴저지 공동대표/ Adjunct Associate Professor at Augusta University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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