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서쪽 관문(關門)인 인천은 적어도 역사를 보자면 서울의 할아버지뻘 되는 고도(古都)입니다. 고구려의 왕자 비류가 불굴의 문학산 부군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것이 바로 미추홀이죠.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격전지였고 고려 시대엔 완전히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려 때 인종 어머니 등 7명의 왕비를 배출해 ‘7대 어향(御鄕)’으로 불리었지요.
인천은 본래 '인종의 고을'이라는 뜻인 인주(仁州)였으나 조선 태종 시기에 고려 왕조의 격하로 주(州)에서 점을 세 개 뺀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평가절하되었지만 현재로 봐도 인천은 부산(330만)에 이어 300여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 도시랍니다.
중국과 마주보는 지정학적 관문이다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많은 도시이기도 한데요. 1903년에 건립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고, 1895년 개관한 애관극장은 최초의 영화관입니다. 1899년 노량진-인천 구간으로 개통된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에요.
경인선 철도가 가설되기전엔 인천 동구에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유래된 동네가 배다리 마을입니다. 1883년 개항 이후 정미소, 양조장, 성냥공장 등 주요 산업이 밀집한 지역이었습니다.

얼마전 이곳을 찾았습니다. 배다리 마을엔 추억의 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헌책방 거리에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풍경 덕분에 공유, 김고은 주연의 드라마 <도깨비>와 영화 <극한 직업>이 촬영되기도 한 곳입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이 지역엔 40여 개에 달하는 헌책방들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집현전, 아벨서점, 삼성서림, 한미서점, 대창서림 등 다섯곳만 남아 있습니다. 옛 모습과 정취를 보존하기 위해 인천시는 배다리 마을을 근대문화유산으로 관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지난 10월 25일 열린 ‘2025 배다리 책피움 한마당’도 그같은 노력의 일환입니다. 한때 번성했던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오랜 역사와 낭만적 감성을 되살려 원도심 책방 문화를 활성화하고, 독서 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2019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 행사는 ‘책이 머문 골목, 사람이 이어가는 이야기’를 주제로 배다리 일대 8개 서점이 참여한 가운데 ‘헌책방 토크쇼’ 등 유명 작가 초청 강연과 공연, 시 낭독회, 사진 전시 등 세부 프로그램이 각 서점에서 진행됐습니다.

거리와 야외 공간에서는 ‘헌책 속에서 만난 보물 전시’ 등 북 큐레이션 전시, 시민이 참여하는 ‘배다리 과거시험’ ‘배다리 책 놀이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구요. ‘배디리 패션쇼’에선 주민들이 다양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인기를 모았습니다.
창영당이 준비한 인형극 ‘배다리 성냥공장 이야기’는 지역의 역사를 콘텐츠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습니다. 이젠 성냥도 추억의 역사가 되버렸지만 1827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성냥은 이후 150여년간 사람들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생필품이었습니다. 성냥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0년 범어사 출신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 갔다가 귀국할 때 처음 들여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1886년 세창양행 무역상사가 성냥을 수입해 팔며 대중화의 첫 발을 떼었습니다. 부싯돌로 불을 피우고 화로 등에 불씨를 키워 소중히 관리하던 사람들에게 성냥은 너무나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였습니다. 성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17년 10월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인천에만 수십개의 성냥공장이 들어서며 성냥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지요.

조선인촌주식회사는 신의주에 부속 제재소까지 두고 연간 7만 상자를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당시 기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성냥개비에 인을 묻히거나 성냥갑을 넣는 공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습니다. 직원이 800명에 달할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요.
성냥갑 제조를 위해 하청을 주는 곳이 500여 호에 이르렀는데 금곡동 일대 공터나 도로변에는 햇볕에 말리려고 널어 놓은 성냥개비와 성냥갑으로 뒤덮였고 빈 성냥갑을 풀로 붙여 다시 사용하는 부업도 성행했다고 합니다. 동네 전체가 성냥공장을 연상시킬 만큼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소득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성냥은 본래 한자어인 ‘석류황’(石硫黃)이 ‘음운변화를 거친 것입니다. 초기에는 석냥 혹은 도깨비불을 뜻하는 한자어 인촌(燐寸)으로 불리었습니다. 공교롭게 발음이 비슷한 인천에 인촌주식회, 곧 성냥주식회사가 세워진 셈입니다.
인촌주식회사 자리는 현재 대형 상가건물이 들어섰고 동판만 옛 역사를 일깨우는 상징물로 남아 있습니다. 인천의 성냥공장 역사를 알려면 인근에 위치한 배다리 성냥마을박물관을 찾는게 제격입니다. 이곳은 2016년까지 동인천우체국이 있던 자리로 리모델링을 거쳐 2019년 현재의 2층짜리 박물관으로 개조되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원숭이 그림이 시선을 끕니다. 원숭이는 재주와 지혜, 관직을 상징하는 동물로, 당시 성냥갑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박물관에선 동영상과 각종 자료들을 통해 성냥의 역사와 제작 과정, 성냥과 관련한 생활사를 소개합습니다. 원목 집하부터 축목 작업, 두약 제작 및 포장까지 작은 성냥개비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제조 과정을 한 눈에 볼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50대 이상 시니어 세대는 어린 시절 한번쯤 다양한 성냥들을 모으던 취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집들이 선물은 다름아닌 성냥이었습니다. 상점과 인물 홍보용으로도 가장 사랑받는 품목이었지요. 그런만큼 박물관에서 역시 시선을 끄는 것은 각양각색의 통성냥과 갑성냥 등 수많은 전시품들입니다. 대한극장, 해바라기백화점, 한미이용원, 국회의원 홍보용 성냥 제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특이하게도 박물관 한 켠엔 동구 금곡로에 있던 금곡다방이 재현돼 있습니다. 그 시절 다방과 성냥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70~80년대까지 사람들은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테이블에 있던 팔각 성냥통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쌓아올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요.
박물관에서는 방문객들이 사각성냥과 팔각성냥통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성냥과 관련한 다양한 문양의 스탬프도 준비되어 있구요. 성냥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을, 성냥을 모르는 세대에게는 흥미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인천 동구는 12월 15일까지 ‘동구 스탬프 투어’를 통해 골목길을 걸으며 배다리의 역사와 예술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젠 생일 케잌에 촛불을 켤 때가 아니면 성냥을 볼 일이 거의 없게 되버린 요즘 배다리 성냥마을박물관에서 옛 추억을 돌이켜 보면 어떨까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훈이네의 미국살이’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hyn
서울의 서쪽 관문(關門)인 인천은 적어도 역사를 보자면 서울의 할아버지뻘 되는 고도(古都)입니다. 고구려의 왕자 비류가 불굴의 문학산 부군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것이 바로 미추홀이죠.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격전지였고 고려 시대엔 완전히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려 때 인종 어머니 등 7명의 왕비를 배출해 ‘7대 어향(御鄕)’으로 불리었지요.
인천은 본래 '인종의 고을'이라는 뜻인 인주(仁州)였으나 조선 태종 시기에 고려 왕조의 격하로 주(州)에서 점을 세 개 뺀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평가절하되었지만 현재로 봐도 인천은 부산(330만)에 이어 300여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 도시랍니다.
중국과 마주보는 지정학적 관문이다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많은 도시이기도 한데요. 1903년에 건립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고, 1895년 개관한 애관극장은 최초의 영화관입니다. 1899년 노량진-인천 구간으로 개통된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에요.
경인선 철도가 가설되기전엔 인천 동구에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유래된 동네가 배다리 마을입니다. 1883년 개항 이후 정미소, 양조장, 성냥공장 등 주요 산업이 밀집한 지역이었습니다.
얼마전 이곳을 찾았습니다. 배다리 마을엔 추억의 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헌책방 거리에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풍경 덕분에 공유, 김고은 주연의 드라마 <도깨비>와 영화 <극한 직업>이 촬영되기도 한 곳입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이 지역엔 40여 개에 달하는 헌책방들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집현전, 아벨서점, 삼성서림, 한미서점, 대창서림 등 다섯곳만 남아 있습니다. 옛 모습과 정취를 보존하기 위해 인천시는 배다리 마을을 근대문화유산으로 관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지난 10월 25일 열린 ‘2025 배다리 책피움 한마당’도 그같은 노력의 일환입니다. 한때 번성했던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오랜 역사와 낭만적 감성을 되살려 원도심 책방 문화를 활성화하고, 독서 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2019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 행사는 ‘책이 머문 골목, 사람이 이어가는 이야기’를 주제로 배다리 일대 8개 서점이 참여한 가운데 ‘헌책방 토크쇼’ 등 유명 작가 초청 강연과 공연, 시 낭독회, 사진 전시 등 세부 프로그램이 각 서점에서 진행됐습니다.
거리와 야외 공간에서는 ‘헌책 속에서 만난 보물 전시’ 등 북 큐레이션 전시, 시민이 참여하는 ‘배다리 과거시험’ ‘배다리 책 놀이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구요. ‘배디리 패션쇼’에선 주민들이 다양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인기를 모았습니다.
창영당이 준비한 인형극 ‘배다리 성냥공장 이야기’는 지역의 역사를 콘텐츠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습니다. 이젠 성냥도 추억의 역사가 되버렸지만 1827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성냥은 이후 150여년간 사람들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생필품이었습니다. 성냥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0년 범어사 출신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 갔다가 귀국할 때 처음 들여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1886년 세창양행 무역상사가 성냥을 수입해 팔며 대중화의 첫 발을 떼었습니다. 부싯돌로 불을 피우고 화로 등에 불씨를 키워 소중히 관리하던 사람들에게 성냥은 너무나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였습니다. 성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17년 10월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인천에만 수십개의 성냥공장이 들어서며 성냥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지요.
조선인촌주식회사는 신의주에 부속 제재소까지 두고 연간 7만 상자를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당시 기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성냥개비에 인을 묻히거나 성냥갑을 넣는 공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습니다. 직원이 800명에 달할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요.
성냥갑 제조를 위해 하청을 주는 곳이 500여 호에 이르렀는데 금곡동 일대 공터나 도로변에는 햇볕에 말리려고 널어 놓은 성냥개비와 성냥갑으로 뒤덮였고 빈 성냥갑을 풀로 붙여 다시 사용하는 부업도 성행했다고 합니다. 동네 전체가 성냥공장을 연상시킬 만큼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소득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성냥은 본래 한자어인 ‘석류황’(石硫黃)이 ‘음운변화를 거친 것입니다. 초기에는 석냥 혹은 도깨비불을 뜻하는 한자어 인촌(燐寸)으로 불리었습니다. 공교롭게 발음이 비슷한 인천에 인촌주식회, 곧 성냥주식회사가 세워진 셈입니다.
인촌주식회사 자리는 현재 대형 상가건물이 들어섰고 동판만 옛 역사를 일깨우는 상징물로 남아 있습니다. 인천의 성냥공장 역사를 알려면 인근에 위치한 배다리 성냥마을박물관을 찾는게 제격입니다. 이곳은 2016년까지 동인천우체국이 있던 자리로 리모델링을 거쳐 2019년 현재의 2층짜리 박물관으로 개조되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원숭이 그림이 시선을 끕니다. 원숭이는 재주와 지혜, 관직을 상징하는 동물로, 당시 성냥갑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박물관에선 동영상과 각종 자료들을 통해 성냥의 역사와 제작 과정, 성냥과 관련한 생활사를 소개합습니다. 원목 집하부터 축목 작업, 두약 제작 및 포장까지 작은 성냥개비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제조 과정을 한 눈에 볼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50대 이상 시니어 세대는 어린 시절 한번쯤 다양한 성냥들을 모으던 취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집들이 선물은 다름아닌 성냥이었습니다. 상점과 인물 홍보용으로도 가장 사랑받는 품목이었지요. 그런만큼 박물관에서 역시 시선을 끄는 것은 각양각색의 통성냥과 갑성냥 등 수많은 전시품들입니다. 대한극장, 해바라기백화점, 한미이용원, 국회의원 홍보용 성냥 제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특이하게도 박물관 한 켠엔 동구 금곡로에 있던 금곡다방이 재현돼 있습니다. 그 시절 다방과 성냥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70~80년대까지 사람들은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테이블에 있던 팔각 성냥통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쌓아올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요.
박물관에서는 방문객들이 사각성냥과 팔각성냥통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성냥과 관련한 다양한 문양의 스탬프도 준비되어 있구요. 성냥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을, 성냥을 모르는 세대에게는 흥미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인천 동구는 12월 15일까지 ‘동구 스탬프 투어’를 통해 골목길을 걸으며 배다리의 역사와 예술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젠 생일 케잌에 촛불을 켤 때가 아니면 성냥을 볼 일이 거의 없게 되버린 요즘 배다리 성냥마을박물관에서 옛 추억을 돌이켜 보면 어떨까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훈이네의 미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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